인터뷰

30년의 동행, 그 끝자락에서
진선호&김광석 전문위원

글. 위성은 사진 E Studio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한국이 장수국가 1위에 올라섰다고 한다. 은퇴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이유다. 2019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는 서울도시주택공사에서 28년을 근무한 전문위원들의 시간은 어떻게 회상되고 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는 없지만 시간의 흐름을 짐작해보기로 한다. 진선호 전문위원(이하 진 위원), 김광석 전문위원(이하 김 의원)을 모시고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청운의 꿈을 안고 입사하다

1989년 2월 1일, 저소득 도시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시개발공사’가 닻을 올렸다. 당시 인원은 약 390명. 건설회사와 관련 공무원 등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속속 합류해 서울의 미래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김 위원은 2월, 진 위원은 3월부터 전업을 뒤로 하고 새로운 포지션을 받아들었다.

“저는 민간건설사에서 필드 시공업무를 한 경력으로 대리로 입사했습니다. 유사기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특채로 들어왔죠. 결혼을 늦게 한 탓인지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선호가 컸어요. 건축직, 엔지니어 파트에서 죽 근무해왔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진 위원)
“서울시 공무원 시절 강동구에서 근무했습니다. 건설 관련 공기업은 당시 핫한 직종이어서 경쟁률이 높았어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굳게 마음먹고 백오십 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사했습니다. 첫 발령은 공보실이었는데 직원이 셋뿐이었어요. 사보 업무에 언론 홍보까지 혼자 하느라 야근도 많이 하고 힘든 시절이었어요. 당시엔 외주가 아니라 제가 직접 취재를 했는데 이제 웹진으로 바뀐다니 추억이 없어지는 기분이 듭니다.”(김 위원) 

두 전문위원은 가감없이 소탈한 어조로 당시를 회상했다. 설립 당시부터 치열한 경쟁으로 내로라하는 인재의 요람이었던가보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처럼,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공사)도 격변을 거듭했다. 97년에 IMF가 터졌고, 2008년 카드대란으로 부동산경기가 요동쳤으며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그 시기들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어낸 일이 쉬울 리 없을터다.

“97년을 지나면서 건설시공사 부도가 많이 났어요. 1년간 관리했던 관악구 재건축 현장이 마무리단계에서 부도가 나서 수습이 힘들었어요. 재개해서 완공시켜야 하는데, 진척이 어려워 ‘일신상의 사유’ 도장 찍은 사직서를 트렁크에 간직하고 다녔습니다. 아내가 두 번을 만류하더니 세 번째에 사업을 종료하면 동의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위장병까지 걸릴 만큼 힘든 상황을 후임자한테 물려줄 수 없지 않느냐고 해서, 버틴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진 위원)

진 위원은 그간에 거쳐온 다양한 현장 중에서 105만 평 규모의 은평뉴타운을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꼽았다. 환경친화적 리조트형 신도시를 조성하는 새로운 시도였고, 다양한 유형의 주택 형태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는 보람이 컸다. 그의 말처럼 개발사업에는 좋은 면과 그늘이 공존하지만 기왕이면 생태적 관점으로 조성한 단지는 주거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한옥마을 조성사업도 의미있는 사업으로 꼽았다.

몸으로 겪어낸 재건축 현장

“외환위기로 재건축회사가 부도나서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던 재건축을 못했어 요. 수습 과정에서 겨우 사업을 완료했는데 건축 비용을 빼고 비용이 남아 입주민 들에게 돌려줬습니다. 민간에서는 건축회사가 모든 이윤을 다 가져가지만 공기 업은 인근 주택 단지보다 높은 가격에 분양할 수 없고 당연히 돌려드려야 해요. 조합원들의 재산을 불려준 역할을 했을 뿐인데, 금액을 높게 책정해서 조합원 에게 돌려줬다는 음해성 소문이 나서 민원이 들어와서 어려웠던 기억이 나요. 이후 재건축은 없었는데 좋은 실적을 냈다고 입주민들이 감사패를 만들어준 기억도 납니다.”
(김 위원)


초창기에는 공공주택 사업에 대한 인지가 부족해 어려움이 있었고, 이제는 도시재생의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시기다. 퇴임 이후의 삶도 변화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 모른다. 일 욕심이 많은 진 위원은 관련 업종으로의 진출을,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 김 위원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려볼 생각이다. 창간사보 담당자였던 김 위원은 사보의 삽화와 디자인까지 맡았던 팔방미인(?)이다. 못다 이룬 꿈은 계속되고, 후배들의 업무 또한 계속되니, 지혜 한 자락을 나눠주시길 부탁했다.



“사실 서양화를 공부하고 싶었는데 못다 이룬 꿈을 사보로 풀어낸 것 같아요. 그림을 더 그려볼 생각입니다. 후배들에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싶어요. 스스로 사규/법규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으니, 현실에 순응하기보다 규칙을 바꾸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일에 있어서의 보람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김 위원)

“제 버킷리스트는 캠핑카 타고 여행하는 삶이지만(웃음) 내년에 PM(프로젝트 관리) 및 CM(건설사업 관리)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6개월째 공부하고 있어요. 이 기회를 빌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스스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모든 일은 지나가기에 순간의 행복을 찾고, 인류애를 갖고 긍정적 가치를 만들어내라고요. 덕을 베풀면 결국은 복으로 돌아옵니다.”(진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