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공원으로 자리잡은 선유도 & 추억을 간직한 공간 신당동 골목 생태공원으로 자리잡은 선유도 & 추억을 간직한 공간 신당동 골목
행복톡톡서울을 걷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블로그 공유하기
  • PRINT
  • COPY

글·사진 여행작가 이동미

서울의 중심을 흐르는 한강, 그 가운데에는 선유도(仙遊島)라는 섬이 있다. ‘신선이 노니는 섬’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살던 화가의 그림 속에 비슷한 곳이 나온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년)은 전국각지 풍광이 뛰어난 곳을 찾아다니며 자신이 본 광경을 그대로 그리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였다. 그의 그림 중에 ‘선유봉(仙遊峯)이 있다. 관악산과 청계산의 서쪽 물과 수리산, 소래산의 북쪽 물이 산자락을 휘감으며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의 붓끝처럼 솟아난 봉우리가 인상적이다. 솔숲과 올망졸망 집들을 품고 있는 봉우리의 아래에는 은빛 백사장이 옥빛 한강 물과 어우러진다. 돛단배와 나룻배가 한가로이 떠 있고 막 손님을 내려준 뱃사공은 키보다 서너 배 큰 삿대를 쥐고 있다. 정말로 신선들이 산봉우리에 앉아 장기를 둘 것 같은 풍광이다.

선유봉 신선들은 어디로 갔을까?

▲ 원형 공간의 옛 모습과 구조 사진

그림 속 선유봉이 지금의 선유도 공원이다. 1925년 대홍수가 나자 한강 범람을 우려해 제방을 쌓고 여의도에 비행장을 만들면서 선유봉을 깎아 흙을 조달해 언덕이 됐다. 한강 치수 사업을 거쳐 언덕은 섬이 됐고, 수돗물 정수장으로 쓰이다가 한동안 방치됐다.
그러던 2002년, 월드컵에 맞춰 선유도는 ‘물(水)’을 주제로 한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옛 정수장을 재활용해 ‘네 개의 원형 공간’을 만들고, 정수과정에서 나온 찌꺼기를 재처리하던 농축조와 조정조는 놀이문화 공간이 됐다. 이름부터 멋진 ‘시간의 정원’은 거대한 침전지의 벽체와 기둥, 지붕의 들보를 그대로 남기고 수로(水路)를 살렸다. 목재 마루가 깔린 산책로는 수로와 더불어 건물의 한층 높이 위로 펼쳐지고, 한 층 아래 지상에서 뻗어 올라온 나무들이 발치에서 하늘거린다. 신선들도 어딘가에 머무르며 물소리를 즐길 만한 곳이다. 이곳은 3차원적 공간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선유도 공원에서는 머리 위로 혹은 나무 위로 흐르기도 한다. 점점 낡아가는 구조물과 달리 점점 생기를 더해가는 식물들이 어우러지며 오묘한 시공간을 만든다. 청 단풍 원추리 물푸레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풀이 공간을 장식한다.

21세기 신선이 되는 선유도 공원

▲ 200석 원형 극장

▲ 철근과 콘크리트 그리고 식물

물길을 따라가면 연꽃과 부레옥잠, 개구리밥이 가득한 ‘수생식물원’이 있다. 더 나아가면 ‘녹색 기둥의 정원’에 이른다. 정수지의 상판 지붕을 들어내고 30개의 기둥만 남겨놓은 곳이다. 담쟁이덩굴이 메마른 콘크리트 기둥을 감싸 오르며 녹색 생명의 힘을 불어넣는다. 볼수록 빠져드는 최고의 산책길이다. 300년 전 정선의 산수화 속 모습은 아니지만 21세기 신선 놀이터로도 손색이 없다. 인간이 훼손한 자연을 식물이 감싸 어루만져 주는 곳에서 부서진 철근 기둥과 녹색식물의 묘한 조화를 이룬다.

배가 출출할 때는 떡볶이가 진리

▲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풍경

이제 걸음을 옮겨보자. 매콤한 간식 떡볶이가 생각나는 시간이다. 신당동을 향하면 DJ DOC의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도끼 빗으로 머리를 빗어대며 느끼한 멘트를 날리는 DJ가 궁금하기도 하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에 도착하면 커다란 아치 아래로 고만고만한 떡볶이집이 줄을 서 있다. 첫 집은 비법을 며느리도 모른다는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집이고, 그 주변으로 ‘마복림 할머니 막내아들네’, ‘삼대 할멈네’ , ‘아이러브떡볶이’ 등이 올망졸망하다. 주문하면 탁자 위에 떡볶이가 올라오고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떡과 다양한 부재료가 풍성하게 어우러지는 떡볶이 한입에 수다가 한 바구니씩 곁들여진다.

▲ 신당동 떡볶이 집의 모습

까만색 떡볶이의 맛은?

한국전쟁 직후 떡볶이는 짜장 소스 즉, 춘장을 넣어 검은색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짜장면은 생일이나 졸업식 등 집안에 큰 일이 있는 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니 짜장 소스인 춘장을 넣은 떡볶이 또한 귀한 음식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소스가 나왔고, 밀가루를 장려하면서 떡볶이 떡은 밀가루로 만들어졌다. 고교야구가 인기를 끌던 때는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가 끝난 후 밀려드는 인파에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었다. 뮤직박스와 DJ 역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신청곡을 적은 쪽지를 가게 DJ에게 건네면 원하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떡볶이를 먹으며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다니, 참으로 낭만적인 발상이다.

▲ 떡볶이 집의 DJ 시간제

대를 잇는 국민 간식, 떡볶이

떡볶이의 역사는 조선 시대까지 올라간다. 정월이면 임금님 상에 쇠고기와 채소를 넣고 간장으로 양념한 떡볶이가 올라갔다. 쌀이 부족한 서민들에게 떡으로 요리한 궁중음식은 호사스러운 것이었다. 소고기를 넣고 간장양념으로 담백하게 요리한 떡볶이는 요즘 궁중떡볶이란 이름으로 한정식집 메뉴에 등장한다. 요즘도 일부 떡볶이집에서는 시간제로 DJ를 운영한다. 이밖에 해물 떡볶이, 카레 떡볶이, 눈물 떡볶이 등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떡볶이를 먹던 십 대들이 훗날 연인과 함께 오고, 결혼해 아이 손을 잡고 오고, 그 아이가 자라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는다. 떡볶이에는 우리 역사의 일부분이며 추억의 맛이고 기억을 소환하는 정겨움이 담겨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