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에서 마루, 거실로의 변화, 한국 주거공간이 재구성되다 대청에서 마루, 거실로의 변화, 한국 주거공간이 재구성되다
행복톡톡집의 향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블로그 공유하기
  • PRINT
  • COPY

전남일 가톨릭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한국의 전통주택은 기후적 조건에 의해 물리적 특성이 결정됐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에 의해 공간의 기능이 결정되고 배치가 이루어졌다. 남방(南方)식의 대청과 북방(北方)식의 방이 결합한 구조는 한국 주택의 대표적 물리적 특성이다.
대청(大廳)은 큰 마루라는 뜻으로, 남쪽 지방에서 더위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마루 구조, 즉 지표면에서 띄워 설치한 목조 바닥을 기본으로 한다.

대청에서 거실로

대청은 온돌방과 대비되는 공간으로, 마당 쪽으로 열려 있으며 뒷면도 판문으로 되어 있어 개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름철에는 낮 동안 생활하는 공간이며, 다목적 공간으로 가정의 의례 행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대청 양쪽의 방은 대청을 통과해 진입하게 되어 있어, 대청이 오늘날의 현관 겸 통로의 역할도 했다. 대청에서 거실로 변화하는 과정에는 많은 과도기가 있었으며, 그 명칭도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한자로 청(廳)인 ‘마루’는 그 바닥의 구성 재료에 따라 붙여진 명칭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전통 한옥의 규모가 큰 대청과 달리 좀 더 작은 공간을 대청마루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개항 이후 서구 문물을 수용한 일제강점기의 일·양 절충식, 또는 서구식 주택에서는 ‘거실’이라는 명칭이 최초 등장했고, ‘응접실’이라 불리기도 했다. 마루는 유리문이 도입되며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이와 함께 점차 난방설비가 도입된 덕분에 마루는 사시사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설비의 발달로 온수 패널의 바닥 난방이 도입된 이후에는 목재 바닥이 사라지면서 마루라는 명칭도 사라졌다.

거실 구성의 변화

거실은 생활의 변화에 따라 여러 단계로 구성이 변해왔다. 1960년대 단독주택의 마루는 안방과는 연결되지만 부엌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았다. 그 이후, 거실이란 명칭이 본격 등장한 시기에는 부엌이 거실 후면으로 이동하면서 거실과 부엌이 미세기문으로 연결되는 구성으로 변화했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면 거실이 부엌과 개방된 구성이 많이 보인다. 이때 모든 실들이 거실을 둘러싸는 환상(環狀)형 평면이 많이 보이는데, 이로써 거실은 한 주택 내 구심적 공간으로 정착됐다.
아파트의 경우, 1970년대 도입 초기부터 서양식 거실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특히 규모가 큰 민간아파트에서는 일찌감치 소파세트와 같은 서구식의 가구도 상당히 많이 보급되었다. 산업화 사회에서 가정은 일터에서 돌아와 쉬는 장소가 됐고, 이때 소파는 거실의 휴식 기능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도시에서 가장은 직장에, 아동은 학교에 나가고, 주부는 가사를 돌보는 식으로 일상의 행위가 분리되었는데, 저녁 시간 온 가족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 표상이 된 것이다. 거실에 소파세트가 놓이고, TV도 안방이 아닌 거실에 설치되었으며, 이로써 거실은 본격적인 가족 모임 장소로 정착했다. 거실은 현대 가족의 화목과 단란의 공간이 됐고, 더욱더 넓고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욕구도 증가했다.

한편 전통적 마루의 개념이 남아 있어 바닥이 목재 마감이었던 1970, 80년대 아파트의 경우, 난방은 라지에이터 식으로 해결했고 바닥 난방이 없었다. 그러나 좌식을 선호하는 우리 주거문화의 습성이 반영되어 1980년대 이후에는 바닥 마감이 패널 난방이 가능한 모노륨으로 대체됐다. 또한 바닥 난방이 정착된 이후 초기의 바닥마감재였던 화학제품은 온돌마루라 불리는 새로운 재료로 대체됐다. 이것은 전통적 마루처럼 지면으로부터 들어 올려진 구조가 아니라, 표면만을 목재로 마감하고 그 하부는 현대화된 기술의 패널히팅 방식을 적용한 절충적 방식이다. 즉 온돌과 마루가 일체화된 새로운 바닥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전통적 마루의 물리적 특성은 사라졌지만 거실은 새로운 한국적 거주공간으로 새로이 탄생했다. 여러 과도기를 거쳐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아파트 거실은 지금의 모습과 같이 거의 고정적인 모습으로 완성됐다.
지난 1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한국의 주거 공간 내부에는 많은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좌식에서 입식으로 변했고, 공간들의 연결 관계도 달라지는 변화가 있었다. 또한 거실에 부여되는 의미가 달라지면서 사용방식도 달라져 왔다. 오늘날의 거실은 전통 대청으로부터 계승되어 왔기에 서구적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적인 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 대청이 과도기적 성격의 마루를 거쳐, 오늘날 거실로 바뀌는 과정은 한국의 주거문화가 전통과 서구, 재래식과 현대식의 충돌과 수용 과정을 거쳐 발달되어 온 결과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