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걷던 길 창덕궁 후원 & 시원한 여름밤의 추억 청계천 길 왕이 걷던 길 창덕궁 후원 & 시원한 여름밤의 추억 청계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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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여행작가 이동미

더위를 피해 여름휴가를 고민하는 계절이다. 시원한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보자. 우리나라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인 돈화문(敦化門)을 지나면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인 창덕궁이 펼쳐진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던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 조선왕조의 이궁(離宮, 화재 등 만약을 대비해 지어 놓은 궁궐)으로 지어졌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에 놓여있다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이 골짜기에 안기도록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자연의 굴곡을 있는 그대로 살려 오목한 곳에 물이 모이면 연못이 들어섰고, 지형을 따라 자연과 동화될 만한 곳에 정자가 앉아있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탁월해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몽룡이 시를 짓던 춘당대

▲ 주합루

현재 남아 있는 조선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창덕궁의 백미는 후원이다. 왕실의 후원은 왕이 공부하고 거닐던 곳으로, 때로는 사냥하고 예를 배웠으며 연회를 베풀었고 은밀한 정치적 결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창덕궁 후원의 멋진 경치 중 첫째는 부용지(芙蓉池)다. 직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사이에 두고 자그마한 정자인 부용정(芙蓉亭)과 2층 건물 주합루(宙合樓)가 마주 본다. 영화당(暎花堂)은 이름처럼 꽃구경하기 좋은 곳이라 왕이 향연을 자주 베풀었다. 영화당은 과거를 감독하던 곳이기도 했는데 과거는 주로 춘당대에서 치렀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받은 과거 시제를 기억해보면. '춘당의 봄기운은 예나 다름이 없는데(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라며 시구에 등장하는 춘당이 바로 이곳이다.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이중 처마의 존덕정

▲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과 이색적인 현판

두 번째 명소는 반도지에 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관람정(觀纜亭)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부채꼴 모양의 정자다. 관람정에 오르면 반도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좌(左) 승재정(勝在亭), 우(右) 존덕정(尊德亭)이 호위하듯 서 있다. 승재정은 언덕 위 높직한 곳에서 관람정을 굽어보고, 존덕정은 쉽게 볼 수 없는 이중 처마형태의 정자다. 존덕정 너머 좌측으로는 폄우사(砭愚榭)가 있다. 폄우’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돌침을 놓는다.’라는 뜻으로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책을 읽던 곳이다. 폄우사 오르는 길에는 군데군데 돌이 박혀있으니 박석(薄石)이다. 왕세자가 걸음걸이를 연습하기 위한 것으로 팔자 모양이다. 한번 따라 해보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던 옥류천

후원 깊숙이 걸어가면 돌돌돌 물 흐르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인조 14년(1636년) 소요암을 깎아 맑은 물이 바위 둘레의 홈을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옥류천(玉流川)을 만들었다. 숙종의 친필 시가 새겨진 소요암 앞으로 옥류천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아나간다. 경주의 포석정처럼 타원형으로 흐르는 옥류천에 둘러앉아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 숙종은 ‘물이 삼백 척을 날아, 구천리에 떨어지네, 부서진 물방울이 흰 무지개를 일으키고, 만 골짜기에 우렛소리가 들린다’고 표현했으니 소요암 용소(龍沼)에 떨어진 꽃잎이 창덕궁 10경 중 제1경이다.

백성들의 삶이 담긴 길, 청계천 길

창덕궁 후원이 왕들이 걷던 길이라면 청계천 길은 백성들이 걷던 길이다. 서울을 둘러싼 산에서 내려온 물이 중랑천과 만나 살곶이 다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들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물줄기가 청계천이다. 600년이 넘는 시간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한 청계천은 문화유산도 다양하다. 1760년 영조 임금의 준천 당시에 청계천에는 모전교,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하량교, 효경교, 마전교, 오간수문, 영도교 등 9개의 다리가 있었다. 그중 광통교는 조선 시대 광통방에 있어 광통교 혹은 광교라고 불렀는데 조선 시대 도성 내에서 가장 큰 다리였다. 광통교는 사신이 지나가는 주요 통로이자 다리밟기와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성계, 이방원, 신덕왕후의 이야기 서린 광통교

▲ 광통교 다리 밑, 왼쪽의 병풍석이 거꾸로 서 있다.

▲ 광통교 아래에서 바라본 풍경

광통교는 1959년 복개공사로 묻혔다가 2005년 청계천 복원과 함께 상류로 150m 이동해서 복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덕왕후 강 씨의 석물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일부 병풍석(屛風石·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감싸는 12방위의 돌)이 거꾸로 되어있었다. 태조 이성계에게는 정실부인이 두 명 있었는데, 향처인 신의왕후(神懿王后) 한 씨 부인은 조선 건국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났고, 신덕왕후(神德王后) 강 씨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원년(1392년) 현비(顯妃)로 책봉되었으니 강 씨가 조선왕조 최초의 왕비다. 강 씨의 소생인 방석(당시 11살)이 세자로 결정되자 조선 개국에 공이 컸던 방원과의 갈등이 깊어졌고, 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신덕왕후의 능을 헐고 석물을 광통교 돌다리 축조에 사용하여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다. 광통교 다리의 돌 하나에도 역사가 서려 있다.

시간을 걷는 길, 청계천 길

청계천 길의 이정표는 ’스프링‘이다. 꽈배기 모양의 조형물로 높이 20m 지름 6m의 스프링은 세계적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와 코사 반 브루군의 공동작품이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리본은 전통 한복의 옷고름에서 착안했고 뾰족한 모양은 청계천과 서울의 발전을 상징하고 있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한여름 밤의 추억 쌓기에 좋은 곳이다. 아래쪽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 벽화인 정조대왕 능행반차도, 상암 MBC 앞의 미러맨 등 인증사진 명소가 기다린다. 옛 사진 속 청계천 주변 판자촌과 염색공장을 만날 수 있는 청계천 박물관도 흥미롭다. 청계천을 걷는다는 것은 수많은 세월의 흔적을 벗 삼아 시간을 걷는다는 의미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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