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건 집에서, 먹고 노는 건 밖에서 집 안 vs. 집 밖 자는 건 집에서, 먹고 노는 건 밖에서 집 안 vs. 집 밖
행복톡톡집의 향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블로그 공유하기
  • PRINT
  • COPY

전남일 가톨릭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과거의 유교적 생활양식으로 볼 때 조선시대의 가정에서는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을 잘 실행하는 것을 품격 있는 생활로 여겼다. 과거 이러한 모든 것이 집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주거의 기능과 의미는 크게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재생산을 위한 장소에서 휴식의 장소로

과거 집 안의 모든 공간은 주(住) 생활공간임과 동시에 의(依), 식(食)을 해결해주는 곳이었다. 옷을 집에서 만들어 입었으며, 모든 음식은 집 주변에서 생산된 것을 가지고 와서 부엌에서 만들었다. 이것을 가정 내 재생산 활동이라 한다. 한국 전통 주거공간은 재생산 및 생업을 위한 노동이 일상생활과 분리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또한 생로병사(生老病死)에 관련된 삶의 행위들이 집안에서 이루어졌다. 집에서 태어나고, 늙으면 봉양을 받았으며, 병이 들면 집에서 간호를 받고 요양을 했다. 그리고 죽음도 집에서 맞이했다. 통과의례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 결혼식을 치루었으며, 환갑잔치를 하고, 죽으면 장례식도 집에서 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과 재생산을 위한 장소, 즉 생업의 장은 도시 공간으로 옮겨갔다. 직장과 주거가 분리된 1970년대 이후 한동안 집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한 가정의 안식처가 되는 것이었다. 유행가 가사에서도 ‘집’은 휴식과 안식의 근본으로 등장했는데,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가사는 집으로부터 기대하는, 주거를 중심으로 한 가정의 이상적인 모델을 표현한다. 이것이 서구적 기능주의와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적인 가정’의 모습이다. 때문에 주거 공간 중 가장 중요한 공간은 가족이 모이는 거실이었다. 그래도 산업사회 초기가지만 해도 집의 비일상적 기능들은 유지됐다. 주거의 여러 기능 중에서 가족끼리의 교류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 가족과 사회의 교류의 장소라는 기능 역시 매우 중요했다. 집은 일상에서는 휴식의 공간임과 동시에 여전히 ‘봉제사접빈객’의 비일상적인 일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생일초대, 집들이, 돌잔치 등으로 집에 손님이 오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근대 사회에서는 많은 삶의 행위들을 집이 아니라 도시의 다른 공간에서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태어나고, 우리나라의 경우 특이하게도 산후조리원이라는 게 있어서 태어난 후 일정 기간을 그곳에서 보내기도 한다. 늙고 병들면 일생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집을 떠나 요양원에서 지내고, 그러다가 결국 더 병이 깊어지면 병원으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모든 생활 시스템은 주거 밖 상업화된 생활서비스, 또는 공공 서비스로 대체되었고, 우리는 이러한 공간을 소비함으로써 비용을 치른다. 이를 위한 공간들이 도시 내 어딘가 따로 있다. 예를 들어 결혼식장, 연회장, 장례식장 등 비일상적인 행사를 위한 공간이 있다. 또한 집이 아니어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많이 있다. 우리는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음식점에서 밥을 먹으며, 심지어는 집들이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초대하기도 한다.

공용공간보다 개인공간의 확보

가족의 단란함을 보장해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던 1970, 80년대의 아파트 설계를 보면, 가족들이 모이는 공간이 가장 큰 면적을 차지했다 그것이 1970년대는 안방이었고, 198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도 거실이 되었다. 따라서 거실을 최대한 넓고 보기 좋게 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거실은 비어있는 시간이 더 많으며, 침실도 밖에 나갔던 가족이 잠깐 들어와 시간을 보내고 잠을 자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적으로 보면 한 가구, 한 사람이 차지하는 주택의 면적은 계속 증가해 왔다. 1970년대 중반 기준으로 5인으로 구성된 중산층 가족에게 알맞은 규모는 15~27평 정도가 일반적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가족의 수가 그만큼 많지 않은데도 그보다 넓은 집을 차지하고 산다.
1980년대까지 굳건했던 주거의 최대 기능, 즉 ‘가족단란’의 의미는 오늘날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을 비롯하여 생활시간 대부분의 활동이 집밖의 도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집은 공허한 공간으로 남아있다. 집에 있을 때도 현대 사회의 개인은 가족의 공동생활공간에서 가족과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방에서 사회와 직접 소통한다. SNS로 불리는 소셜 네트워크 및 온라인 커뮤니티 등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다양한 교류는 과거 이웃과의, 그리고 친척과의 교류의 일상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거실, 식사공간 등 주거 내 공동생활공간이 가졌던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교류의 일상도 점점 뜸해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교류의 행위는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주거의 많은 기능들이 도시로 빠져나간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을공동체의 해체와 새로운 교류의 장

오늘날 사람들의 관계는 지역을 초월한다.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었고 친척과 친구들은 서로 멀리 산다. 아는 사람들이 지역적으로 광범위하게 분산되었기 때문에 교류와 만남의 활동은 너와 나의 집이 아니라 중간의 어디쯤에선가의 공간을 선호하게 되었다. 생일, 축하연 등 비일상적인 모임도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에서 치른다. 이는 집에서 번거로운 일을 치르지 않고 간편한 것을 좋아하는 생활문화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생활반경이 날로 광역화되는 공간적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1999년 한국 최초로 스타벅스가 등장한 이후, 이제는 거리에 카페가 넘쳐난다. 카페 문화가 번성하는 현상은 집을 대신할 교류의 공간이 도시 내 공간으로 이동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여가 행위 들을 위해 집 밖에는 영화관, 노래방, 찜질방 등이 마련되어 있다. 주생활의 기능은 언제 어디서나 도시 내에서 부유하는 각종 공간 중의 한 곳 안에서 선택적으로 행해질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살며 생활하는 행위와 기능이 주거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느냐, 밖에서 이루어지느냐 하는 논의는 무의미해졌다.
따라서 도시는 자꾸 새로운 공간을 필요로 한다. 또한 집에서 하는 일상의 활동도 점점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통계를 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1가구당 차지하는 주거면적과 방의 개수, 그리고 한 사람이 차지하는 주거면적 등 주거공간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1인당 주거면적은 1970년과 비교하여 2000년 이후에는 거의 세 배 이상 늘어났다. 기능이 빠져 나가고, 가족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도 별로 없으며, 누구도 별로 찾아오지 않는 넓은 빈 공간이 오늘날의 집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