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의 아이콘, 다산 정약용의 1표2서(一表二書) 청렴의 아이콘, 다산 정약용의 1표2서(一表二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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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연(서울주택도시공사 청렴옴부즈만)

얼마 전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에 연수를 다녀왔다. 청렴과 관련된 여러 강의를 들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는 다산 정약용이 쓴 세 권의 서책 이야기였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사자로 구성된 서책의 제목 중 앞의 두자는 저자가 책을 쓴 이유이고 뒤에 두자는 책의 방향성을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 유형원과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이다. 그는 출중한 학식과 다양한 재능을 갖춰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신유사옥(辛酉邪獄)으로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피폐한 농촌사회의 모순에 관심을 갖고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그 결과 다산은 1표2서(一表二書)라 불리는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를 저술해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약용의 대표 작품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정약용이 전라남도 강진에서 19년간 귀양살이를 하던 중에 집필하여 1818년에 완성된 것이다. 정약용이 학문적으로 가장 원숙해가던 때 이루어진 저술이고, 그의 민생과 관련된 대표 작품이다. 그는 16세부터 31세까지 아버지가 현감·군수·부사·목사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고 있을 때, 근무지에 따라가서 견문을 넓혔다. 33세 때는 그 자신도 경기도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지방 행정의 문란함과 부패로 인한 민생의 궁핍을 생생히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직접 찰방·부사 등의 목민관을 지내면서 지방 행정에 대한 산 체험을 경험한 후에 목민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과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다산은 근민관(近民官)으로서 수령의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리기 위해 『목민심서』를 저술한다고 썼다. 즉, 수령은 모름지기 『대학』에서 이르는 바, 수기치인지학(修己治人之學)을 ‘배우는 데 힘써 수령의 본분이 무엇인가를 직시하고, 치민(治民)하는 것’이 곧 목민하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이 뜻은 간단한 것 같지만 여기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실천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 책에서 심서(心書)라고 한 것은 목민할 마음은 있었지만 몸소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을 절절히 녹여서 쓴 책이라는 뜻이다. 그는 책의 서문에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는 알지 못한다’고 적었다. 또 『목민심서』를 비롯해 여러 목민서가 지향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목민관의 정기(正己 :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함)와 청백 사상이 전편에 걸쳐 강하게 흐르고 있는 점이다. 또 청렴은 수령의 본무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덕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 능히 수령 노릇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실무지침서이자 종합재판학 서적, 흠흠신서

『흠흠신서(欽欽新書)』는 당시 살인 사건의 조사·심리·처형 과정이 매우 형식적이고 무성의하게 진행되는 것을 개탄해 다산은 사건을 다루는 관료 사대부들이 율문(律文)에 밝지 못하고 사실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기술이 미약해 이에 따라 생명존중 사상이 무뎌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이를 바로잡고 계몽할 필요성을 느껴 책을 만들었다. 책은 1819년에 완성 1822년에 편찬되었다. 이는 한국법제사상 최초의 율학 연구서이며, 동시에 살인사건을 심리할 때 필요한 실무 지침서다. 『흠흠신서』는 법의학·사실인정학·법해석학을 포괄하는 일종의 종합재판학적 저술이었다. 백성들의 억울한 내용을 모아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쓰여진 책들을 제자들과 함께 사례 연구로 다시 집대성하여 만들어져서 신서(新書)라고 명명했다.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한 서적, 경세유표

『경세유표(經世遺表)』는 다산이 행정기구의 개편을 비롯하여 관제·토지제도·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책이다. 앞머리에 ‘방례초본인’을 붙여 저술 의도를 밝히면서 ‘터럭만큼도 병통이 아닌 것이 없는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이다’라고 하여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서만 국가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 책은 그러한 개혁의 원리를 제시한 것으로, ≪주례≫의 이념을 근거로 하면서 당시 조선의 현실에 맞도록 조정하여 정치·사회·경제제도를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이루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체제 상으로는 먼저 개혁의 대강과 원리를 제시한 뒤 기존제도의 모순, 실제 사례, 개혁 필요성 등을 논리적이고 실증적으로 상세히 설명하여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 책은 관직 체계의 전면적 개편, 신분과 지역에 따른 차별을 배제한 인재 등용책, 자원에 대한 국가 관리제 실시, 정전제 토지제도 개혁, 부세제도의 합리화, 지방 행정 조직의 재편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혁안들은 사회 체제의 근본적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또, 당시 남인 실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인 토지제도 개혁과 민생 안정뿐 아니라 기술 발달과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국강병의 실현이라는 북학파 실학자들의 주장이 폭넓게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은 정약용 자신의 정치·사회적 이념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당시 실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한 사회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 밖에도 당시 사회의 실상과 제반 모순을 비판적 안목에서 상세히 서술하고 있어 조선 후기의 정치·사회·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책은 중앙 정계 관료들에게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목민심서』, 『흠흠신서』가 당시의 법률 체계나 사회 구성 원리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방 행정이나 형사 사건 등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상세하고 세부적인 실무 지침을 규정하고 있는 책이라면, 『경세유표』는 국가와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을 위한 원칙이 보다 근본적으로 제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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