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짜리 방에서 사는 나날 단칸방 vs. 고시원 한 칸짜리 방에서 사는 나날 단칸방 vs. 고시원
행복톡톡집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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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 가톨릭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몸을 뉘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거주하기 위한 집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일 것이다. 도시 내 인구는 증가하고 땅값과 집값이 크게 올라가는 상황에서 집의 공급이 제한되고, 개인의 금전적 자원이 한정될 때 단칸방과 고시원과 같은 불완전한 ‘최소한의 주거’가 필요한 주거의 형태 중 하나로 제공된다. 이는 사람이 사는 엄연한 주거의 한 종류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떠나고 싶은, 이러한 주거공간들의 생존법칙은 무엇일까.

옛날의 불완전한 주거생활

도시에는 이러한 작은 단위의 ‘최소한의 주택’, 또는 ‘일실(一室)주택’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흔히 ‘단칸방’이라 불리는 주거 형태는 일제 강점기의 ‘행랑살이’에서도 볼 수 있다. 과거 갈 곳 없는 농민을 포함한 하층민들이 가장 쉽게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의 가사보조원이 되어 행랑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것이었다. 부인은 청소, 세탁, 급수 등 여러 가사 일을 맡고 남편은 인력거일, 행상, 품팔이 등으로 가계를 이끌었다. 주인집과 행랑식구들은 서로의 생활을 훤히 들여다보며 살았다. 대문간에 면한 행랑에는 독립적 대문간, 부엌 및 현관의 기능을 겸하는 한 칸의 공간이 있었으며, 여기에는 부뚜막과 물독, 아궁이, 선반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방 출입은 부뚜막을 통해 이루어졌다. 부부와 아이로 구성된 한 가족이 한 칸의 방에서 살게 되는 전형적 단칸방 형식이다. 변소는 주인집과 함께 썼던 것으로 짐작된다. 행랑방이 큰 한옥의 일부를 차지한 것이었다면, 차가(借家)는 기역자형 안채와 일자형 문간채가 일체화된 디귿자형 도시한옥에서 볼 수 있다. 바깥채에 방 한, 두 칸에 대문과 변소를 두었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임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공간구성은 행랑방과 비슷했다.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족은 분화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해체된 가구의 구성원들은 어디서 살았을까. 일제 강점기부터 6.25 전쟁을 거쳐 1970년대까지는 도시에는 늘 주택이 부족했다. 따라서 그들은 기존의 주택에 수용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서울에 자리 잡은 각 가정에서는 시동생, 처남 등의 친척, 또는 전혀 인척관계가 아닌 하숙생이란 이름의 동숙인, 또는 방 하나를 임대했던 세입자 등이 한 집에서 기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친척의 경우 방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했다. 그렇지만 차츰 이들은 방을 따로 쓰고, 친척집보다 열악할지언정 다른 집의 일부를 임대하여 사는 방식을 선택했다.

경제개발과 함께 1960~1970년대는 새로운 형식의 민간 단독주택이 활발하게 건설됐다. 하지만 도시의 주택부족은 여전했다. 단독주택에 들인 셋집은 신혼부부, 도시 저소득가구, 이농 가구 등에게는 주택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셋집, 즉 임차세대는 주인집, 즉 임대세대와 하나의 건물을 공유하면서 대문과 출입 현관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1960년대의 셋방은 단층 단독주택에서 수평적으로 세대가 분리되어 방 하나를 세를 내주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었다. 이때 임차세대는 문간방, 또는 후면의 후미진 북쪽의 방 한 칸과 그에 딸린 부엌 한 칸을 사용하게 되어 가장 기본적인 일실주택의 형태를 띠었다. 방 출입은 주로 부엌을 통해 이루어졌다. 또한 주인세대와 현관을 같이 쓰는 경우도 있어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동거형 거주방식의 구성도 종종 있었다. ‘단칸방 셋방살이’의 전형적 형태였다. 그러나 이후 사생활 보장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며 독립적인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최소한의 삶의 공간

1970년대 이후에는 셋집 외에도 ‘최소한의 주택’들이 다양한 양상으로 등장했다. 예를 들어 미니 2층으로 시작된 ‘지하(地下)주택’도 그중 하나다. 지하주택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1970, 80년대 도심 내 저렴한 주택을 필요로 하는 계층에게는 대안이 됐다. 서울시에는 기존 단독주택지 전역에 매우 성행할 정도였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실주택’, 또는 단칸방은 한 가족이 살 수 있는 주거 수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대신 도시의 단독 거주자가 주로 살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최소한의 주거 요건만을 갖춘 집의 형태인 고시원, 쪽방 등이 등장했다. 이보다 좀더 나은 조건의 주택은 원룸이라 부른다. 쪽방은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각 개별 공간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의 최소규모이다. 약 0.5평 내지 1평 정도의 최소한의 공간들이 3, 4층 정도의 건물에 밀집해 들어차 있고, 쪽방촌에는 이러한 건물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다. 화장실은 보통 한 건물에 하나씩이고, 세면실, 세탁실 등도 공동으로 사용한다. 부엌은 없거나, 혹은 한 건물에 하나 정도 간이로 배치하여 공동으로 사용한다. 부엌이 없는 경우 개별 공간 내에서 가스버너 등을 사용해 불안한 취사행위가 이루어지니, 가뜩이나 밀집한 상태에서 화재에 취약하다. 쪽방은 비좁은 공간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어 창이 없는 경우도 있다.

2000년 이후에는 좀 더 나은 시설의 ‘고시원’이 등장했다. 쪽방과 같이 초소형의 개별 공간이 모여 공동주택 형식으로 발전한 것인데, 건물이 더욱 고층화하고 몸집이 커지며, 단위주택은 더욱 밀집됐다. 작은 규모의 개별 공간을 배치하게 되니, 복도 안쪽의 줄에 위치한 공간들은 바깥으로 창을 낼 수가 없다. 주택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또한 미로와 같은 비좁은 복도는 화재 시 피난에 매우 취약하다. 개별 공간에는 침대 및 책상 등이 갖추어져 있다. 대부분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몇 개 있고 취사를 위한 공간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고시원은 주거와 숙박의 경계선에 있는 가장 하위 단계의 ‘최소한의 주택’이라 할 수 있으며, 간이숙소의 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로 단신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시의 필지가 차츰 거주용이 아니라 투자용으로 바뀌고, 자본이 있는 사람들은 그 땅을 떠나 아파트로 이동하였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소규모 공동주택으로 대체되어 수익을 창출하는 수단이 됐다. 고시원의 경우에도 설비는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왔다. 예를 들어 단칸방, 아궁이, 부엌으로 이루어진 과거의 셋집 형식이 새로운 다층주택의 유형으로 변화하는 데는 난방 설비의 발달이 일조했다. 화장실, 욕실 등을 비록 공동으로 사용하지만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사생활이 보장된다.
현재 고시원에는 수많은 학생, 취업준비생 등 취약계층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리라 생각하고 있다. 더 나은 집으로 옮길 희망과 잠재적 욕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임시로 거쳐 가는 주거의 형태라 할 수 있다. 고시원뿐만 아니라 소형 주택을 확대하기 위해 정부는 2010년 4월 준주택 개념을 도입하여 주택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주거 기능을 제공하는 주택들, 즉 오피스텔, 고시원, 노인복지주택 등을 제도권에 포함시켰다. 이처럼 ‘최소한의 주거’이자 ‘일실주택’은 또 다른 유형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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