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걷다] 


알싸한 한약 내음, 서울약령시 & 따끈한 그리움, 낙원 떡 골목 





디지털, 인공지능, 자율주행…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그 반대편에 자리한 아날로그 감성이 떠오른다. 어릴 적 아버지의 친구는 호주머니에서 달착지근한 감초를 꺼내주셨고, 명절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베 보자기에 포실포실 시루떡을 쪄내셨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엔 이처럼 우리의 전통과 추억이 살아있다. 오늘은 옛 기억을 추스르며 서울약령시 약전골목과 낙원 떡 골목을 걸어보자.


 

알싸한 한약 냄새 폴폴~ 약전골목

제기동 약전골목에 가면 지하철역에서부터 그 느낌이 전해진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서울약령시, 우리나라 한약재의 70%가 사고 팔리는 곳이다. ‘허준’이며 ‘동의보감’ 같은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골목엔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한약 냄새가 진동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한약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오미자, 산수유, 홍화씨, 구기자, 사자 발 약쑥, 감초, 숙지황, 당귀처럼 눈에 익은 것도 있지만 상백피, 아가위, 유근피, 찰피 등 생소한 것들도 많다. 동대문구 제기동, 용두동 일대 23만 평에 달하는 넓이에 500여 종의 한약재가 통용되고 1천여 개가 넘는 한약 관련 업소가 자리하고 있는 이곳이 서울약령시다.


 

조선 초기부터 약탕기를 달이던 곳

이곳은 대체 언제부터 한약재를 다루었을까? 궁금해 하며 걷다 보면 비석 하나가 눈에 띈다. 보제원 유허비(普濟院 遺墟碑)다. 비문엔 조선 건국 초기부터 왕명에 의해 여행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고 가난과 병환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했던 구휼기관 보제원(補劑院)이 제기골(현 제기동)에 있었다는 사실이 적혀있다. 참으로 오래전부터 약탕기가 끓고 한약 냄새가 진동했으리라. 이후 전국에서 생산된 한약재가 옛 성동역(현 미도파백화점 자리)과 청량리역,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을 통해 운반되니 취급 업소들이 모여 지금의 모습이 됐다. 재래시장인 경동시장과 혼동된다고 하여 1995년부터 ‘서울약령시’로 특화했다. 서울약령시에 대한 흥미로운 스토리는 서울약령시 한의약박물관(02-969-9240, http://museum.ddm.go.kr)에서 만날 수 있다.


 

한약처럼 푹 고운 토성옥의 설렁탕 한 그릇

서울약령시에 왔으니 그냥 가기는 섭섭한 법. 계절이 바뀔 때나 몸이 허할 때는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십전대보탕이나 쌍화탕을 권하니 집에서 달여 먹을 수 있도록 재료를 분량 맞추어 주거나 탕제원을 거쳐 택배로 보내준다. 중국산 한약재 때문에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약전골목은 그래도 여전히 그때 그 정취를 담고 있다. 걷다가 출출해지면 ‘토성옥’(02-966-1839)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먹어보자.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으로, 설렁탕을 한약 달이듯 푹 고아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낸다. 선농단은 이곳에서 10분 거리, 조선 시대 왕은 봄이 되면 선농단에서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시범을 보인 뒤 소를 잡아 큰 가마솥에 끓여 노인들에게 대접했다. 설렁탕의 어원은 여럿인데 선농단에서 끓인 국인 선농탕(先農湯)이 설롱탕를 거쳐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니 토성옥에서 먹는 한 그릇의 설렁탕은 의미가 있다.



남주북병, 떡이 맛난 골목

이번에는 낙원 떡 골목으로 가보자. 이곳이 떡 골목이 된 건 조선 왕조가 몰락하면서 궁중을 나온 상궁과 나인들이 떡 장사를 하며 형성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북촌에는 권세를 누리는 양반들이 살고, 종로에는 시전(市廛) 부자들이 살면서 시시때때로 떡을 해 먹었다. 낙원동이 북촌과 종로 시전을 잇는 길목에 있으니 자연스레 떡집이 모인 것이다. 때문에 ‘남촌(청계천의 남쪽 동네)에는 술이, 북촌(청계천의 북쪽 동네)에는 떡이 맛있다는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말이 생겼다. 한때는 떡집 30여 곳이 성행했지만,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여 일부는 없어지고, 일부는 떡 카페로 변했다.



손목의 힘으로 만드는 떡

그래도 떡 골목인지라 다른 곳보다는 떡집이 많다. 떡 만드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마침 떡을 찌고 또 절편을 만드는 광경이 눈에 띈다. 쌀가루를 빻아 찐 다음 이것을 찰지게 치고 다시 둥글게 말아 다식판으로 예쁜 무늬를 찍어내듯 절편 모양을 찍어 칸칸이 자른다. 기계가 아닌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작업이라 손목이 남아나지 않지만 그래도 손으로 해야 맛있기에 장인들은 바삐 움직인다. 집어 주시는 떡 한쪽을 입에 넣으니 맛도 맛이지만 방금 만든 떡의 따뜻함에 가슴까지 따끈해진다. 이것이 그리움의 맛이고 정(情)의 맛이다.

 


K-culture로 다시 조명 받았으면

낙원떡집 골목에는 3대를 이어오는 궁중 떡 전문점이 있고, 신행 떡 전문점도 있다. 궁중 떡은 오색단자, 갖은 편, 두텁떡처럼 모양과 색이 예쁘고, 신행 떡은 찰떡류만 사용한다. ‘사돈지간이 찰떡처럼 잘 붙어 사이가 좋아지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되도록 칼질도 하지 않는다. 칼질하면 사이가 갈라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신행 떡은 차고 넘치게 담는 것이 예의이니 떡도 우리의 따뜻한 정서가 담겨 있다. 떡에는 찌는 떡, 빚는 떡, 치는 떡, 지지는 떡의 네 종류가 있다. 시루떡은 찌는 떡의 대표이고, 인절미는 치는 떡, 경단은 빚는 떡 그리고 지지는 떡은 화전이라는 사실도 떡 골목에서 배웠다. 약식, 찹쌀떡, 방울증편, 송편, 계피떡, 호박콩찰떡 등 알록달록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떡들은 잔칫집에 빠지지 않는 먹거리요, 끈끈한 정을 나누는 매개체이며 좋은 일의 상징이다. 떡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떡 카페에서 예쁜 모양과 맛의 떡에 감탄하는 외국인을 보며 K-culture와 더불어 떡이 다시 조명 받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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