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향기] 


쇼핑하다, 다시 짓다

국민주택 vs 동호인주택


전남일 가톨릭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여건에 맞는 주택을 구입하거나 임대해 거주하고 있다. 이와 달리 예전에는 자신이 살 집을 손수 짓거나, 친한 이웃과 협력하여 짓거나, 또는 비용을 지불하고 기술자를 불러들여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과정에서는 내가 살 집에 대한 요구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었으며, 또한 그 집이 어떻게 지어질지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산업시대에 들어서면서 주거를 공급하는 과정과 주거 공간을 취득하는 과정은 크게 변화했다.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주택의 대량 공급

상품으로서의 주택이 대량생산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은 일제강점기 도시 한옥부터였다. 이는 1970, 80년대 ‘집장수집’이라는 단독주택 형태로 이어졌다. 한편, 한국전쟁 이후 공공의 주도로 ‘국민주택’ 형식의 주택이 대량 공급됐다. 이를 위한 건축계획상 전략은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표준형 주택을 만드는 것이었다. 누가 살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거주자의 유형을 가정해 놓고, 불특정 다수에게 주택을 공급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 주택을 선택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신축된 집을 구입할 때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단위 공간의 구성만 보고 계약한다. 그리고 32A형, 42B형 등 이름 붙여진 몇몇 종류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 건물에 똑같은 규모와 똑같은 구조의 집들이 위아래 배치되어 있으며, 건물의 형태도 한 단지 내에서 거의 똑같다. 이러한 양상은 전국적으로 반복되어, 다른 지역의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공간 구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같은 시대에 지어진 아파트는 평수나 구조 등이 동일한 몇 가지 타입으로 제공되고 있다.


 

단순화된 아파트의 공급

주택 공급 체계가 국가의 대량생산이라는 주택 정책에 맞춰지고, 건설 기술이 발달하면서 공공, 민간을 막론하고 주택 공급자는 소비자가 원하는 집을 제공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 또한 주택 생산이 산업화되면서 그 과정에 많은 주체들이 관여하게 됐다. 이렇게 생산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그 결과물은 역설적이게도 단순한 것이 되고 말았다. 모든 거주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거주자를 일정 범주로 묶어서 최대한 해당 그룹에 보편타당한 계획을 내놓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 기준은 면적, 즉 주택의 소비자가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이후 국민주택에 각종 권장정책을 쓴 결과, 전용면적 25.7평(분양면적 32평)이라는 국민주택 규모는 상한선이자, 전형적인 아파트 유형이 되어 대표적인 아파트의 면적 기준이 되고 있다. 이때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2세대 핵가족의 거주를 기본으로 설정하고, 거실 및 주방, 그리고 3개의 침실 구성이 기본이 됐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아파트의 ‘획일화’라는 대표적 속성, 나아가 우리나라 주거의 대표적 속성으로 나타났다.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아파트는 주택시장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아파트를 전문적으로 짓는 대기업의 가세로 주택의 생산과정에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게 됐다. 대규모 건설에서는 거주자의 다양한 취향과 가족상황 등 수요자의 요구를 일일이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파트의 인기는 떨어지지 않았고, 지어진 집을 보지 않고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건설회사의 입장에서는 미리 분양하고, 자금을 조달하여 공사비를 충당하면서 집을 완성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선분양제도다. 지어지지 않은 집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수요자는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주택을 택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서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갖가지 방안들을 동원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의 단위 공간을 가건물로 지어놓고 미리 보도록 하는 모델하우스다.



동호인주택의 등장

주택시장에서 거주자가 다양하게 집을 선택할 기회가 제한적인 가운데 아파트는 보통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주거유형이 되었다. 아파트의 식상한 평면과 삭막한 환경 등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지만, 아파트 외의 주거대안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또한 원하는, 개성 있는 단독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주거지를 개발해서 살 지역, 이웃, 주택의 형태, 평면 구성까지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이를 초창기에는 동호인주택이라 불렀다. 편리하긴 하나, 생활공간이 획일적이고 환경적 배려가 부족한 아파트, 그리고 환경적 조건은 좋아도 관리 부담이 큰 단독주택, 이 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탄생한 것이다. 또한 주택의 개념이 투자 가치에서 거주 가치로 변화하면서 주거 형태의 새로운 차원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과감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출발하여 현재의 소위 ‘공유주택’의 개념으로 진화해 온 이러한 주거 선택의 방식에는 첫째, 집을 짓거나 구입하는 과정에서 거주자의 취향과 요구가 반영되는 방식을 취한다는 것, 둘째, 소규모 생산의 조합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야 하므로, ‘공동체’라는 유대가 형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공동체 개념은 건설 과정뿐만 아니라, 입주 후에도 지속된다. 직업이나 생활수준, 등 라이프사이클 등에서 동질성이 높은 학교 동창이나 이웃, 직장 동료들끼리 대지 구입, 단지 계획, 주택 시공 과정에 적극 관여해서 집을 짓는 것이다. 이들은 ‘아파트 탈출’이라는 동기가 매우 강력하여, 교외 주거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이상적 주거형으로 꿈꾸어 왔던 단독주택을 희망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지 비용이 덜 드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주택의 유형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 또는 단독주택들이 조합된 연립주택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개발하게 된다.


최근에는 도심에도 단독주택 대지를 마련해 다세대주택의 형식으로 지어지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서울 마포의 성미산 마을의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집)’, 부산의 ‘일오집’ 등이 대표적이다. 시장에 공급된 주택을 쇼핑하듯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자가 동시에 공급자가 될 수도 있다. 거주자는 설계를 직접 할 수도 있고, 또는 설계자에게 요구하는 내용을 적극 전달할 수 있다. 또한 비용과 직결된 시공 과정에도 개입하여 재료와 구조를 조율하면서 자신이 지불 가능한 한도 내에서 주택자금을 산정할 수 있다.


현재는 대량생산, 대량 공급의 방식이 아닌 지역주택조합, 서울시의 토지임대부주택 등 시행의 주체도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청년 및 사회적 약자 등 특정 거주자를 위한 공유주택도 등장하여 거주자 맞춤형 주택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여러 긍정적 사례들은 공급자가 정해놓은 표준적인 틀 안에 거주의 개성을 제한하는 주거 형식과 주거 취득의 과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시도들이다. 동시에 획일적인 주거 공간 및 주택의 형식, 나아가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뛰어 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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