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걷다]
하늘로 흐르는 은빛 강물, 하늘공원 억새길 & ‘오래된 것’의 아지트, 회현 지하상가
글ㆍ사진 이동미 여행작가
오래 전, 한강 변에는 난지도(蘭芝島)라는 섬이 있었다. 고고한 난(蘭)과 영지(靈芝)가 자생하며 아름다운 새들이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다.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과 비슷해 사람들은 오리섬 또는 압도(鴨島)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곳에 어느 날인가부터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서울의 쓰레기가 쌓여 산을 이루니 악취가 진동했고, 쓰레기 더미 위에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의 판잣집이 들어섰다. 시간이 지나 더는 쓰레기를 받을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1993년 2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완전히 폐쇄되었고, 갈 곳 없는 쓰레기는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쓰레기 매립장의 완벽변신, 하늘공원
이 가을에 난지도를 찾아갔다. 하고많은 서울의 좋은 곳을 두고 하필 쓰레기 산을 찾아갈까? 쓰레기가 산을 이뤘던 난지도는 ‘쓰레기 산’이라는 오명을 벗은 지 오래다. 오염된 침출수를 처리하고 지반 안정화 작업을 하면서 초지 식물과 나무를 심어 생태계를 복원하였다. 2002년부터 생태환경공원(生態環境公園)이 되었고, 월드컵경기장에서 바라보는 2개의 난지도 봉우리 중 앞쪽이 하늘공원이고 다른 하나가 노을공원이다. 평화의 공원에서 지그재그 모양으로 선회하면서 하늘공원으로 오르는 2백90여 개의 계단은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이란 팝송을 떠오르게 한다. 계단 끝, 하늘공원의 돌 이정표를 지나면 ‘하늘공원’은 정말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하늘공원에 서면 2002년 한일월드컵의 개막식과 개막전이 열렸던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보이고,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북한산, 동쪽으로는 남산과 63빌딩, 남쪽으로는 한강, 서쪽으로는 행주산성이 보인다.
하늘과 맞닿은 하늘공원
총 5만8천여 평의 하늘공원은 생태공원으로 복원하면서 물 빠짐을 안배한 듯 남북 쪽이 높고 동서쪽이 낮다. 이 중 3만여 평에 억새가 자리해 있다. 억새는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 억새밭에 들어가면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바람이 불면 하늘거리는 억새의 모습을 어느 시인은 억새를 ‘하늘로 흐르는 은빛 물결’이라 했다. 은빛 물결이 멋진 가을날이면 하늘공원에서는 억새 축제를 개최한다. 파란 가을 하늘과 흰 구름, 억새 사이로 하늘공원의 백미인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진다.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화학적 연료가 아닌 한강의 강바람을 이용한 발전소다. 새 둥지처럼 생긴 이국적인 조형물인 ‘하늘을 담는 그릇’은 2009년 설치미술가 임옥상 씨가 설치한 조형물로 하늘공원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풍력발전기와 ‘하늘을 담는 그릇’을 넣고 억새와 함께 셀카를 찍는 사람들의 어깨에 가을볕이 가득 부서진다.
음악 따라 추억여행, LP 가게
이번에는 남대문로 회현 지하상가에 가보자. 서울 시내에는 30여 곳의 지하상가가 있는데 중앙우체국과 신세계 백화점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회현 지하상가는 제법 오래된 지하상가 중 하나다. 정식이름은 ‘회현지하쇼핑센터’로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오래된 것’들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중고음반가게다. 클래식에서 팝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LP 판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있어 국내 LP 애호가들이 모여든다. CD나 DVD보다 투박하지만 정겨움 가득한 LP가 장르별로, 알파벳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LP 상가뿐 아니라 최초의 유성기인 에디슨 축음기, 턴테이블, 앰프 등 음향장비를 볼 수 있고 때로는 즉석 음악 감상실이 되기도 한다. 과거로 돌아간 듯 아련한 추억과 향수에 젖어 LP 판을 뒤적이는 사람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얼굴에 가을이 묻어난다.
우표, 화폐 수집가들의 아지트
회현 지하상가는 우표를 수집하는 사람들인 우취가(郵趣家, Philatelist) 혹은 우취인들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회현 지하상가의 위치를 보면 한국은행, 서울중앙우체국과 가깝다. 새로운 우표가 발매되면 우표수집가들이 몰리던 시절, 수요와 공급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의해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다. 당시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씩 우표상과 화폐상이 있었지만, 이제는 몇 집 남아 있지 않다. 화폐상은 종이돈, 엽전, 외국돈 등을 모두 다루는데 지폐는 시대별로 구분해 첩을 해 놓고, 엽전은 작은 봉투에 앞뒷면이 잘 보이도록 포장을 해 놓았다. 외국돈은 미화 2달러가 희귀종이라 이를 가지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많이 찾고 있으며, 엽전은 상평통보, 조선통보 등이 있다. 또 우표상에 가면 세계 최초의 우표인 페니블랙(penny black), 갑신정변 때문에 21일만 사용된 문위(文位)우표 등 세계 역사와 흐름이 한눈에 보이는 진귀한 우표가 기다린다.
아날로그가 그리워지는 시간
우리나라 화폐는 국제 시장에서 꽤 인기가 있다. 화폐 발행량이 그리 많지 않고 사용 시기도 짧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아두지 않으면 외국 마니아들 손으로 넘어가 먼 훗날에는 외국에서 몇 배의 돈을 주고 사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표만큼 화폐 상도 그 수가 현저히 줄었고 또 줄고 있다.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지만 가을날이면 자꾸만 옛것이 생각난다. 나오는 길에 필름 카메라 판매장이 눈에 띈다. 1970년대, 1980년대 카메라부터 요즘은 보기 힘든 온갖 종류의 필름도 있어 구경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란다. 디지털카메라가 통용되면서 그 자리를 내주었던 필름카메라가 레트로(Retro) 열풍으로 다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우표와 화폐의 레트로 열풍도 은근히 기대하고 싶어지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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