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이슈]
‘형제애의 도시’에서 대학이 함께 성장하는 법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웨스트 필라델피아 이니셔티브’
글·사진 채지형 여행 작가
도시에서 대학은 중요한 위치상을 갖는다. 대학이 있는 지역은 교육환경이 잘 갖춰져 있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대학 부근은 대학에서 주지 못하는 삶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왔다. 대학과 지역사회 협력으로 도시가 변화한 사례 중 하나가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커뮤니티다. 정부뿐만 아니라 금융기관, 개발업자, 전문가 집단, 일반 시민이 모여 함께 머리를 맞대고 ‘웨스트 필라델피아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을 진행, 대학과 도시는 잃어버린 명성을 되찾았다.
대학을 중심에 놓은 도시재생
20세기 초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려들면서, 미국 주요 도시는 인구가 수십 배 증가했다. 갑자기 불어난 인구로 인해 도심은 슬럼화 되고 삶의 질은 떨어졌다. 미 의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49년 주택법 제 1장에 의거한 연방도시재건 프로그램을 전개, 도시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중산층을 위한 주택공급에 초점이 맞춘 계획안에 따라, 필라델피아에서도 중산층을 대상으로 주택을 공급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규모 도시재생 사업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 경제적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평가 속에, 한계만 드러내고 끝냈다. 이는 사회 문제로 이어졌다. 유펜의 한 대학원생이 거리에서 살해당하는 끔직한 일이 일어났다. 주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1996년에는 펜 연구원 중 한 명이 43번가와 라치워드 블럭에서 사고를 당했다.
일련의 사건은 주민과 대학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펜실베니아 대학 총장 주디스 로딘(Judith Rodin)은 펜실베니아 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이 모인 UDC(University City District)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프로젝트 ‘웨스트 필라델피아 이니셔티브(West Philadelphia Initiative)’ 전략을 내놓았다. 이 프로젝트는 다른 도시 재생과 달리, 대학을 도시 재생의 핵심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안전한 대학, 살기 좋은 도시를 위한 노력
WPI에서 가장 먼저 진행한 사업은 안전하고 청결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밤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곳곳에 가로등을 설치했다. 조명기구와 설치비용의 50%를 지원하는 ‘UC Brite’ 프로젝트를 통해 2500여개 이상의 조명이 설치됐다. 안전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할 수 있게 됐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순찰하는 ‘UCD 대사(ambassador)’를 운영하고, 벽을 어지럽게 만든 그라피티를 제거하는 등 걷기 좋은 거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나무심기 운동을 펼쳐 녹지를 넓혀갔다.
환경문제와 함께 대두된 큰 숙제가 주택문제였다. WPI는 주택 공급 안정화를 위해 대학에서 주택을 매입,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하거나 재판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또한 ‘파트너쉽 CDC 홈 바이어스 클럽’을 통해 집을 갖고 싶지만, 돈과 지식이 부족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클럽을 조직, 개인 상담을 진행했다. 신용문제 해결과 주택 매매 등에 주민끼리 협력하고 전문가가 도와주는 터전을 마련해 큰 성과를 얻었다.
WPI는 직접 투자를 통해 건물을 개조, 주거공간 제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활용도가 낮은 산업 공간이 주요 타깃이었다. 창고를 재사용하거나 주차장의 용도를 변경해, 잃어버린 활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UCD의 서점과 호텔, 레스토랑 등이 들어선 상업시설도 주차장을 개조했다. 현재 이곳들은 주차장이었던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 넘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정부의 역할도 있었다. 도심지에 건물을 짓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각종 규제를 풀어주고, 10년간 세금과 재산세를 면제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완벽은 우리의 적” 유연성 있는 프로젝트 진행
WPI의 중심 사업 중 하나는 공공 교육에 대한 투자였다. 사람들이 머물기 위해서는 자녀들이 다니고 싶어할만한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8년 펜실베니아 대학은 필라델피아 교육청, 필라델피아 교사 연맹과 협력해 공립학교를 세우기로 했다. 그 노력의 결과 초등학교를 주축으로 한 ‘펜 알렉산더 스쿨’이 문을 열었고, 펜실베니아 대학은 학생당 1330달러의 기부금을 지원하는 등 이곳을 최고의 학교로 만들기 위해 힘을 쏟았다.
웨스트 필라델피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지역사회 주민들은 주거에 대한 안정감을 얻었다. 경제 활성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고용이 늘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돼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공격적인 도시 재생, 고용 창출과 주택문제 등 실질적인 문제 해결, 정부의 지원, 그리고 주민들과 적극적인 대화와 협력이 WPI의 성공을 만들어냈다. 도시는 시간의 흐름과 사는 이들에 따라 변하는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공간이다. WPI를 진행한 이들의 좌우명은 ‘완벽은 우리의 적’이다. 이들은 완벽한 프로젝트를 만들기보다, 일단 실행하고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개선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왔다. 어쩌면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이같은 유연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더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펜실베니아 대학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