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해외이슈] 


쇠락한 공업도시에서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스페인 빌바오





도시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려는 시도는 그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여러 상황들을 고려해야 한다. 단 하나의 획일적인 처방이란 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도시에서는 최고의 해결책이, 다른 도시에서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과 해결 방안, 긴 안목을 가진 지자체와 행정기관의 결단, 지역 주민들의 의견 등이 고루 반영되어야 한다.


예술·문화계에 적을 두고 있는 나는 사실 도시 계획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도시 재생의 한 사례를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쇠락한 도시를 되살리는 데 좋은 해결책 중 하나가 문화와 예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도시 재생의 좋은 예들이 많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스페인 예술로 걷다』에서도 다뤘던 스페인 도시 빌바오의 경우를 이야기하려 한다(사실 스페인은 영어식 표현으로, 정식 명칭은 에스파냐(España)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쓰이는 스페인으로 용어를 통일하겠다).


 

스페인을 대표했던 산업도시의 위기

스페인 북쪽에 있는 도시 빌바오(Bilbao)는 15세기부터 철 수출로 부와 명성을 쌓았던 곳이다. 19~20세기에 와서는 철강 산업과 조선업을 발달시키면서,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산업도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1975년경부터 오일 쇼크의 여파, 대규모 홍수의 발생, 우리나라 포항과 같은 신흥 철강 도시의 성장 등 여러 원인들이 겹쳐 기간산업이 무너지게 되었다. 빌바오 시의 실업률은 1970년대 초에는 3%에 불과했으나 1985년에 이르러 25%로 치솟았다. 설상가상으로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스페인은 역사적 과정에 따라 여러 왕국들이 하나로 합쳐진 나라다. 지역마다 역사와 전통, 경우에 따라서는 언어마저 다르다. 그러다 보니 각 지역에서는 스페인 중앙 정부의 통치에서 벗어나 분리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2017년에는 카탈루냐 자치 정부가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실패하기도 했다). 그 지역들 중에서 빌바오를 포함한 바스크 지역이 가장 과격한 분리 독립 투쟁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빌바오 시의 경제와 치안 사정은 점점 나빠졌고, 한때 활기찼던 공업지역은 생기를 잃고 슬럼화 되어 갔다.


 

미술관으로 지역 경제를 되살리다

1991년 스페인 중앙 정부와 바스크 주 정부, 빌바오 시와 시민들은 쇠락한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 그중 한 가지 방법으로 1억 달러를 들여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을 유치하기로 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구겐하임재단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1992년에는 뉴욕, 1995년에는 베네치아에 세워졌다.


1997년 10월, 빌바오 네르비온(Nervión) 강가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Museo Guggenheim Bilbao)이 문을 열었다. 미술관으로 지역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것에 의구심을 갖는 시선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미술관이 문을 열기 전에는 2만5천 명 정도였던 관광객이 미술관 개관 후 첫 3년 동안 약 40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약 5억 유로(한화로 약 6,400억 원)로 추산됐다. 빌바오 인구가 약 40만 명이니 그 2배가 넘는 관광객이 매년 이곳을 찾은 것이다.


빌바오 시는 미술관 건립과 함께, 도시 전체를 친환경 문화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지나친 산업화로 오염이 심했던 네르비온 강의 수질을 개선하고, 강 주변에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조성했다. 도시 곳곳에 생태 환경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한때 쇠락했던 공업도시가 세계적인 친환경 문화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덕분에 빌바오의 기적은 최근 조선업 침체로 빌바오의 전철을 밟고 있는 포항, 통영 등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상상력 넘치는 미술관 건물과 사랑스러운 꽃 강아지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에 전 세계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미술관 건물에 있다. 이 건물은 캐나다 출신의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의 작품이다. 그는 거대한 손이 마음 내키는 대로 빚어낸 듯이,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건물을 만들어냈다. 건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360도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건물 외부 재료는 비행기 외장재로 쓰이는 티타늄이다. 이 금속 재료 판을 3만3천여 장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덕분에 건물 표면이 물고기 비늘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미술관 마당에 앉아 있는 사랑스러운 꽃 강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2미터의 거대한 강아지는 2만 개의 화분이 피워내는 꽃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의 작품 <퍼피(Puppy)>다. 원래는 미술관 개관 기념으로 임시 설치되었지만 관람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됐다. 이후로 미술관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메리골드, 베고니아, 봉선화, 페튜니아, 로벨리아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화분에 담긴 채 강아지 형상을 만들어낸다. 죽은 꽃이나 조화가 아닌 살아 있는 식물이기 때문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형태와 빛깔로 행인들을 즐겁게 해준다.


실제로 이곳 빌바오 시민들은 쿤스의 강아지를 자신의 반려견처럼 사랑한다고 한다. 덕분에 미술관 야외 공간이 내 집 앞마당처럼 친근해진다. 내가 사는 지역에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상징물이 있다면 자부심이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이것이 대중의 인기가 가진 힘이다.


<퍼피>의 인기는 어쩌면 빌바오에서 구겐하임미술관이 차지하는 위상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는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은 미술관의 힘. 절망한 시민들의 삶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핀 미술관의 위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겐하임미술관의 마스코트 <퍼피>에 더 열광하고 마음을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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