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향기] 


집의 변천사를 통해 서울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전남일 가톨릭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쳐 왔으며, 서울은 그 격변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우리가 주택부족을 겪지 않은 적이 없었고, 주거환경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요즘 서울의 주거지 모습을 보면 단독주택이라는 주거 유형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아파트 외에는 국적불명의 평지붕의 다가구·다세대주택들이 단독주택지를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주거 형태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 변천사를 이곳에 담았다.


 

서양식 주택의 시작

단독주택으로 분류할 수 있는 특별한 사례인 한옥은 천연기념물과 같이 북촌, 돈암동, 용두동 등 몇몇에만 남아있다. 이는 근대주거지가 형성되던 1930년대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주택 유형으로서 중산층을 대상으로 지어진 집들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채가 둘러싸는 형태이며, 도시의 가족에 꼭 맞는 규모였다. 그렇지만 한옥보다 양옥이 더 낫다는 계몽적 주장, 즉 주택개량 논의가 대중을 대상으로 지속되면서 한옥은 불편한 것이라는 의식이 확산되었고, 건설비 측면에서도 점차 서양식 주택에 비해 경쟁력을 잃어갔다. 한옥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되었고, 한국전쟁 이후 효율적 주택 건설을 위한 주택 정책 역시 대부분 양옥 일변도로 진행되었다. 또한 1962년의 도시계획법 및 토지수용법, 1964년의 새로운 도시계획법 등 택지개발 관련 제도들이 정비되면서부터는 서울에서 대규모 주택지 조성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공공에 의한 집단 단독주택인 국민주택의 건설이 활발했는데, 이때 계획의 목표는 “재래식 주택을 제거하고 표준형 주택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었다. 민간부문에서도 본격적인 주택건설 체계를 형성하여 상업성을 띈 주택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면목동, 역촌동 등이 그때 조성된 대표적 민간 단독주택지다. 여기에 지어지기 시작한 주택들은 모두 서양식이었으며, 이들 단독주택들은 도시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주택 수요를 셋방이라는 이름으로 수용하면서 점점 과밀화됐다.


 

공동주택의 출현과 확산

현재 서울은 공동주택이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 과밀화가 심화되는 상황에 이르자 한 가족이 하나의 주택에서 거주하는 이상적인 주거 모습은 변질됐다. 과거 마땅한 임대 전용의 주택이 없었던 시절에는 단독주택의 일부를 세를 내기도 했지만, 점차 셋집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밀집된 형태의 주택으로 변모하게 됐다. 셋집은 점차 각 주택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형식으로 바뀌면서 임대 위주의 주거공간, 즉 다세대주택으로 변화했다. 이 경우는 단독주택의 필지에 세워졌지만 ‘공동주택화한 단독주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본격적인 공동주택인 아파트가 등장한 이후, 아파트는 ‘땅’이라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주거용 건물의 밀도를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 되었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이면에는 한 주택을 부모, 자식 세대가 공유하지 않고 핵가족 혹은 개인이 주택을 쪼개어 살고자 하는 요구가 자리한다. 건물은 모여 있는 형태지만, 삶의 양상은 따로따로 사는 것이다. 가족 구성의 분화와 함께 진행된 것이 ‘아파트로의 민족대이동’이라 할 수 있다. 즉 가족 형태의 분화와 건물의 밀집화 과정은 동시에 진행되어 왔으며, 그 변화를 대부분 아파트가 담당했다.



최초의 아파트 단지, 마포아파트

1962년 건설된 최초의 아파트 단지인 마포아파트는 “현대적 시설을 갖춘 생활 혁명의 상징이이며, 현대적인 집단 생활양식을 취하는 성과의 하나로서, 국민들의 생활 문화 향상과 도시 집중화를 해결하는 대안으로서의 고층주택”이라고 평가됐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아파트가 선호되고, 정책적으로 장려된 이유를 대변한다. 1962년 대한주택공사의 발족과 함께 공공에 의한 아파트 공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지금의 LH공사, SH공사는 여전히 아파트 공급의 커다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근대적 주거 단지의 계획 개념이 적용되었던 동부이촌동의 한강아파트(1966~1967) 단지, 강남 개발에 때맞추어 건설된 반포아파트단지(1972~1973)에 이어 잠실아파트단지(1975~1977), 고덕 지구(1982~1984), 둔촌 지구(1982~1983) 아파트단지 등이 속속 건설되었다. 목동과 상계동의 신시가지 개발 역시 1980년대 후반 진행된 대대적 공공 건설 프로젝트로서, 주택 부족의 해소에 큰 기여를 했다. 이 당시의 아파트는 서울에 지어진 저층아파트의 마지막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저층아파트는 더 이상 지어지지 않았다. 과거에 지어진 이들 아파트들은 낙후되어 이미 고층아파트로 재건축 되었거나, 혹은 이제나 저제나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



고급 주거 공간으로 부상한 아파트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고 공공자금이 지원되는 등 정부의 지원이 활발해지면서부터 민간 기업이 아파트 건설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건설 산업은 기업의 이윤 확보에 좋은 수단이 됐다. 민간 아파트 건설이 활기를 띄면서 주택 건설량이 급증하는 기폭제가 되어 주택부족 해결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당시의 민간 건설 아파트 단지는 아파트의 이미지를 고급주거로 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파트가 확산되는 데 가족 형태의 변화도 한몫했다. 과거에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도 많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핵가족 등으로 변화한 가족 형태를 수용하는 것에는 아파트가 최적의 공간으로 각광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편리한 주거 형태에 대한 요구도 점차 증대되었다.


1980년대까지 아파트는 판상형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주류를 이루어 획일적이고 무미건조한 환경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에 이르면 아파트는 어느덧 단독주택을 제치고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가 됐다. 상계 신시가지에서 25층의 고층아파트가 선보인 이래, 아파트는 점차 고층화로 치닫게 되었으며, 이후 철골 구조의 초고층 아파트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는 처음에는 한 두 동으로 개발되었으나, 2000년 이후에는 단지를 이루는 대단위 개발로 변화하였다. 또한 이러한 초고층 아파트 유형은 후에는 일반 주거지역에까지 유행처럼 확산되어 지어지게 되어 이제는 50층 60층의 아파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의 주거지는 최대의 밀도, 즉 사업성을 달성하기 위해서 공공, 민간을 불문하고 최대한의 기술력을 동원하여 초고층 타워형 아파트로 채워지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그 안의 개개의 집들 안에는 가족 분화의 마지막 과정을 거친 소가족, 또는 한 사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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