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사람들] 


사옥(社屋) 이야기 

전 가든파이브 사업단장 박병옥 

 




1998년 말 지금의 개포동 신사옥을 준공하고 최첨단 IBS빌딩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었는데 얼마 전 사옥관리를 담당하는 후배가 사옥이 입주한 지 20년이 되었고 장비 대부분이 내용연수(耐用年數)가 도래되어 교체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는 첨단사옥이 아니라 어쩌면 노후사옥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야 했다.

지난 1998년 ‘신사옥총괄업무 수행자’ 라는 이유로 사옥에 관한 일화를 써달라는 홍보실의 원고 권유를 받고 평소 좋아하는 고전(古典)과 연계하여 적어보기로 하였다.


 

오소야천 고다능비사(吾少也賤 故多能鄙事) 

내가 어렸을 적에 천하게 자라서 지저분한 일을 하는데 능하다


1989년 ‘서울특별시 도시개발공사’가 창설이 되어 첫 자리를 잡은 곳이 정동 경기여고 옛 교사(舊校舍)이다. 찬바람이 들어오는 낡은 사무실에서 부서별로 사규(社規)를 만들어가며 처음 대하는 낯선 업무와 씨름하다가 퇴근길 몇 발짝 걸어 나오면 기다리던 ‘정종 대폿집~’.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어묵(오뎅)에 정종대포 한두 잔 걸치면 얼큰해져서 하루의 피로가 말끔하게 풀리는 듯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났던 아련한 그 시절, 우리들의 첫 번째 정동사옥은 경기여고의 낡은 교실이었지만 그렇게 낭만이 있었던 곳이었다.

경기여고 시절이 채 두 해도 지나지 않아 ‘성수동 뚝섬경마장’으로 회사가 옮겨갔다. 뚝섬 경마장 관중석 밑으로 꽤나 넓은 사무실이 있었고 그곳을 사무실로 사용했는데 낡아 빠지긴 경기여고 구교사에 비해 나을 것도 없는 그런 수준이었다. 장마철에 비가 새는 일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으며 어느 부서인가는 천정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뚝섬 경마장 입구는 불야성에 화려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변신했었다. 경마가 끝나던 저녁 무렵에 왁자지껄 흘러나오는 사람들을 맞아주던 돼지갈비집이 그대로 우리에게 인계되었고 우리들의 퇴근길은 이곳에서도 풍요롭고 행복했었다. 보도는 물론 차도 한구석까지 나앉았던 연탄화덕에서 연기를 피워내며 고기 굽던 냄새 때문에 여기도 그냥 지나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고담준론(?)을 펼치곤 했었다.

결국은 강남의 요지 개포동 첨단 사옥으로 이전하게 되지만, 우리 공사는 ‘정동 경기여고’, ‘뚝섬 경마장’등 참으로 노후된 건물로만 옮겨 다녔었다.

공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소야천 고다능비사 (吾少也賤 故多能鄙事)’라.(“내가 어렸을 적에 천하게 자라서 더러운(지저분한) 일을 하는데 능하다.”)

우리 공사가 정동, 뚝섬을 거치며 그토록 낙후된 시설로 전전했기 때문에 개포동 최첨단 사옥에 입주했을 때 더욱더 만족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업무가 때로는 지저분하고 힘들어도 ‘오소야천 고다능비사’라는 내공이 쌓여 그런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낼 수가 있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해 본다.


 

안양갱수미 중구난조(羊羹雖美 衆口亂調) 

양고기 국이 아무리 맛있어도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추기는 어렵다 


사옥을 지을 터는 대치지구 택지개발부지로서 반듯한 장방형부지(長方形敷地)였지만 지반(地盤)이 경암(硬巖)이었다. 발파하며 파 내려가는데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졌다. 진동과 소음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예상을 하고 조심스레 작업하며 소음과 진동 측정을 통하여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싶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같은 시기 착공되었던 인접부지 옆 건물 대청타워도 같은 민원이 제기되었지만 민간공사다 보니 민원처리비를 책정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였기에 공사를 계속할 수 있었고, 우리 공사와 비슷한 규모의 공사였지만 결국은 우리보다 일 년 이상 앞서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공사가 일 년 이상 늦어지면 공사비는 엄청나게 더 들어간다. 인건비와 자재비 상승을 감안하면 민원처리비를 책정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훨씬 비용도 덜 들고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공사비 명목에 민원처리비를 책정하는 일이 부담되었기 때문에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하며 조금씩 파 내려가느라 터파기에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

결과를 놓고 보면 대청타워보다 비용도 상대적으로 많이 들고 준공도 일 년 이상 늦어졌다. 이 모든 것을 사전에 예상했었지만 공공기관이 시행하는 공사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지금의 박원순 시장 시스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과단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 당시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아쉬움이 가득 남았다. 1998년 12월 지금의 개포동 대청말 사옥이 준공되었다. 당시에는 IBS(Intelligent Building System)빌딩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었는데 최첨단 IBS사옥에 입주하면서 한동안 우왕좌왕했었다. 애써 만들어 놓은 전자결재를 용기가 없어 감히(?) 사용치 못하다가 서울시가 전자결재를 시행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출발했던 일, 어느 부서는 IC카드를 사용하기 귀찮다고 사무실 출입문을 항시 열어놓아 잔뜩 돈 들이고도 IBS사옥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던 사례도 있었다.

사옥 정문 현관 앞에는 필로티 양쪽 끝으로 철골 두 개가 삐져나와 있는데 마치 잘라내야 할 것을 그냥 내버려둔 것 같이 보인다. 설계자의 의도는 건물 전체가 사각형으로 너무 반듯하여 단조로움을 완화하고자 일부러 시공한 것인데 이런 설명을 듣기 전에는 공사를 하다 만 것 같이 지저분하게 보이니 잘라낼 수 없느냐고 한마디씩 했었다. 


또 지금은 결국 로비 한쪽을 우리은행이 자리 잡고 있어서 사옥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우리은행 건물로도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처음 입주 시부터 로비에 쓸데없는 공간이 왜 그리 넓으냐는 시비는 끊이지 않았었다. 대형 건물에 처음 들어서면 탁 트인 넓은 로비가 주는 개방감이 값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대단한 무형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임대료 수입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설명을 누차 반복했었지만 지금은 결국 우리은행이 자리 잡고야 말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 하면 ‘우리은행에 세를 주며 받아내는 수입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달려들 것만 같아 지금은 속으로만 웅얼거리고 만다.

지금의 사옥이 한때 푸르덴셜 보험사에 매각할 뻔한 일도 있었다. 당시 사옥 5층에 푸르덴셜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는데 우연히 휴게실에서 그쪽 직원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오가는 이야기 중에 사옥 짓는데 얼마쯤 들었냐는 질문에 토지비까지 대략 1,000억은 들었을 거라는 대답을 했었다. 얼마를 주면 팔겠느냐는 질문에 팔지 않겠다고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두 배로 쳐 주면 논의해보겠다고 답했었다.

우리 한국사람 정서로는 안 팔겠다는 표현이었는데 외국계 푸르덴셜 관계자는 며칠 후 서너 명이 팀을 꾸려서 사옥매매 흥정을 하러 왔던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당시 두 배 이상 쳐서 팔고 그 자금으로 새로운 사옥을 또 지었더라면 훨씬 더 나은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 본다.

당시 최첨단 신사옥에서 새로운 것을 펼쳐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역시 새로운 제도와 문화의 정착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는 일이었다. 고위층에 있던 분이 전자문서를 믿지 못하고 종이문서를 고집했던 일도 있었고 출입정보를 관리해야 하는 시설에서 드나들기 힘들다고 출입문을 항시 열어두어 출입관리시스템에 오류가 쌓여 애를 먹었던 일, 공조시스템을 무시하고 갑갑하다며 창문을 열고 근무하던 일부 부서 직원들도 있었다. 열거하면 끝이 없는데 관리한다고 강제하고 단속하는 일은 한계가 있는 일이라서 답답하기만 했었다.

‘양갱이수미라도 중구난조(羊羹雖美 衆口亂調)’라 “양고기 국이 아무리 맛있어도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추기는 정말 어렵다”라는 말이 새삼스러웠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니라” 


스테인리스 제품이 처음 선을 보였을 때는 참으로 대단하게 여겨졌었다. 세월이 가도 녹이 슬지 않고 반짝거리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동안 강철제품은 물이 묻으면 산화되며 녹이 나기 때문에 물기를 재빨리 닦아냈는데 그래도 차가운 강철에 습기가 달라붙어 관리를 조금만 소홀하게 해도 녹이 나기 일쑤였다.

그러니 아무리 물이 묻어도 또 세월이 흘러가도 녹이 나지 않고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정말 위대한 발명품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생각을 한순간에 접게 만든 순간은 어느 건축가의 강연을 듣고 나서였다.

서양에서는 아주 오래 된 물건들을 귀하게 여기는 풍조가 있는데 물건보다는 물건에 담겨있는 스토리를 더욱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마을의 아주 오래된 낡은 다리를 두고 ‘우리 몇 대째 할아버지로부터 계속 건너온 다리’, ‘아버지가 페인트를 칠하신 다리 난간’, ‘여기는 우리 할머니가 밑에서 쉬시던 곳’이라고 하며 다리에 얽힌 조상의 스토리와 세월의 흔적을 귀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녹이 나지 않아 세월의 흔적과 조상의 손길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스테인리스는 매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개포동 최첨단 사옥이 20년이 지나면서 장비가 노후되어 교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옥은 노후되어 가지만 그 속에 얽힌 수많은 스토리들은 정말 가치 있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30년사를 발간하며 그 스토리를 찾아낸다니 정말 반가운 일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옛것을 제대로 알고 새로운 도약을 해야 더 멀리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공사가 창설된 지 30년이 흘러갔다. 그동안 달라진 것과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서울특별시 도시개발공사’에서 ‘SH공사’로 그리고 ‘서울주택도시공사’로 간판이 바뀌었다. 우리들의 터전인 사옥도 ‘정동 경기여고’에서 ‘뚝섬 경마장’으로 또 ‘개포동 현재사옥’으로 이전하며 옮겨왔지만 우리 공사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있는 한 변함없이 남겨질 것, 정체성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녹이 생기지 않아 좋은 스테인리스보다 세월이 갈수록 손때가 묻어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 공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인 없는 공공의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사장 임기가 3년이라 어차피 세월가면 바뀌고 새로운 사장이 부임할 때마다 기업문화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사장만이 공사의 주인이 아니며 공사의 진정한 주인은 평생 근무하는 직원들인 것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말이 있다.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니라.”라는 가르침이다.

모든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주인 노릇을 하면 공사의 주인이 되고 기업문화가 생겨나고 공사의 역사는 만들어져 간다는 생각이다. ‘수처작주’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시도되었던 사례가 있었다. 우리 공사가 인근 주민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럽게 다가가고자 하여 강당을 활용하는 방안이 나왔었다.

우리 공사가 아파트를 짓는 회사이니 회색빛 콘크리트가 연상될 것이고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역시 하나같이 경직된 사람들로 여겨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사옥 강당을 활용하여 문화행사를 적극적으로 펼쳐 문화를 사랑하는 따뜻한 공사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을 했다. 강당은 통상 전 직원 교육이나 행사, 조례 등에 사용되며 한 달에 십 여일 사용하면 그나마 많이 사용되는 것이고 대부분은 문이 닫혀있게 된다. 그러나 많은 돈을 들여 시설을 하고 허구한 날 문을 걸어 둘 수밖에 없다면 대단한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강당을 공연장으로 만들어 인근 주민들과 함께 사용하여 문화가 넘쳐나는 장소로 활용하여 공사 이미지도 개선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은 문화행사를 통한 사회 기여가 일반화되어 곳곳에 문화행사가 넘쳐나지만 그 당시로서는 특별한 시도였었다. 그 당시 강당에서 ‘대청말 영화제’, ‘한국페스티발 앙상블 음악회’, ‘청소년 연극제’ 등 영화제, 음악회, 연극제 등을 시작하였다. 그 중에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이면 언제나 내 집처럼 편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대청말 영화제’ 가 이십여 년이 다 된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한 생각이 든다.

이제는 공사가 아젠다(Agenda)를 문화로 내세워 좀 더 적극적으로 문화행사를 펼쳐가며 ‘콘크리트 회색빛 이미지’를 ‘온기가 도는 문화의 이미지’로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 공사의 명제(命題)가 서울시민의 주거복지사업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되겠지만 사각형으로 우뚝 솟은 사옥빌딩의 단조로움을 사옥 정문 필로티 상단의 삐져나온 붉은 철골이 완화시켜 주듯이, 우리 공사의 차가운 콘크리트 이미지에 온기를 더해주는 문화 사업이 좀 더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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