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사람중심의 도시재생사업, 선도적 모델 제시할 것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
차량 통행만 가능했던 서울역 고가, 30여 년간 방치돼 온 50살 세운상가, 30%밖에 남지 않은 창신동의 봉제공장들, 그리고 좁고 낡은 을지로 인쇄골목 등. 화려한 옛 명성이 무색하리만치 쇠락해버린 서울 도심 곳곳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서다. ‘싹 밀어버리고 새로 만드는’ 과거의 개발 방식이 아니라, 노후화되거나 손상된 몸에 새살을 틔워내듯 한 걸음 한 걸음 사람중심, 지역 맞춤형 방식으로 개발·리모델링·보존하는 것이 도시재생의 핵심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도시재생 모델을 기반으로 정부는 작년부터 전국의 100여 곳에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서울시도 이 사업에 참여해 시민들의 행복을 가득 담아내고 든든한 일터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젊은 서울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이 도시재생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을 만났다.
Q. 국내 최초로 서울시가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 수행하고 있는데 도시재생이란 무엇인가요?
A. 대한민국이 지난 50여 년간 빠른 속도로 산업화·민주화를 이루고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정말 괄목할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소득 3만 달러, 5천만의 인구를 가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면서 이제까지 성장과 개발의 패러다임 속에서 해왔던 도시 관리 기법, 즉 재건축, 뉴타운 재개발 등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습니다. 사업성도 많이 떨어지고 주민 간 갈등도 심해진 데다, 개발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많아졌으니까요.
또 한편으로 서울은 천 년의 고도이자 600 년 간 조선의 수도였는데 그런 역사적 자취들이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름다운 강과 산, 언덕 등 자연 지형과 골목길, 필지 같은 것들도 잃어버렸죠. 이처럼 개발과 성장 속에서 훼손됐던 것들을 다시 찾고 역사와 공동체, 문화, 아름다운 지형 등을 어떻게 지속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성과 위주의 개발’이라는 패러다임을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재생’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때가 된 거죠.
2012년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개발시대에 대한 성찰을 시작했어요. 과다하게 지정됐던 재개발 뉴타운 중에 사업성이 없거나 주민 갈등이 심한 곳,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곳 등 400여 개를 해제했죠. 물론 ‘재생’이라고 해서 일절 개발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사업성이 있고 잘 추진되고 있는 곳은 독려하면서도, 보존과 리모델링이 필요한 곳은 해당 지역과 지역 주민들에게 적합한 맞춤형 방식으로 도시 재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Q. 그동안 서울시가 시행해 온 도시재생 사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가장 먼저 얼마 전 천만 명이 다녀갔다는 ‘서울로 7017’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1970년대에 차량 중심의 길이 2017년에 보행로로 탄생한 건 ‘사람 중심’으로 가는 도시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보행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걷고 만나고 즐길 수 있도록 해 그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인데 서계동·중림동·회현동·남대문 일대의 재생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다시 세운 프로젝트’ 세운상가입니다.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었다가 낙후의 길을 걸어온 세운상가를 리모델링 하고 보행로를 연결해 상권의 활성화를 이루기 위한 것인데요. 주목할 것은 그 안에 있는 산업입니다. 그 빌딩에만 1천400여 개 업체, 주변까지 거의 4~5천 개가 있는데, 70~80년부터 종사해 온 기술 장인들이 모여 전기·기계·금속·조명·조립·전자·음향 등 굉장히 다양한 산업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죠. 여기에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진 스타트업, 청년기업들이 결합해서 시너지효과를 내면 4차 산업혁명의 혁신지가 될 수 있습니다. 4차 산업 하면 인공지능이나 드론을 떠올리곤 하는데 독일처럼 전통산업, 제조업이 결합될 때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해집니다. 독일 정보통신산업협회 4차 산업혁명 부서장인 볼프강 도르스트 사무총장 역시 서울 전역에서 세운상가야말로 4차 산업혁신지가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혁신지의 조건 중 하나인 주거문제는 서울주택도시공사가 현재 청년들의 주거지 300여 세대를 우선 조성 중이고 순차적으로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추가적으로 세운상가에 산업 지도를 만들어 어떤 산업, 어떤 장인들이 있는지 알려주고 있고 기술코디네이터를 운영 중이며 세계 진출을 위해 글로벌 언어 번역도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아직 시작단계지만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일취월장할 것으로 믿습니다.
Q. 향후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새롭게 변화할 서울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A. 도시재생 차원에서 들여다보면 서울은 지역별로 전통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세운상가는 물론 을지로의 인쇄, 마장동의 육가공, 창신동의 봉제, 영등포의 철공업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종사자를 보면 대개 50~70대로 젊은 세대가 없기 때문에 머지않아 소멸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재생적 차원에서 이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입니다.
봉제를 예로 들면 창신동에 1천300여 개 업체가 있어요. 한때는 3천 개까지 있었다지만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줄어든 거죠. 사실 ‘패션’하면 미래 산업이라고 생각하는데 봉제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에요. 패션과 봉제는 결합돼야 해요. 동대문이 세계적인 경쟁력이 갖게 된 이유도 그 뒤를 봉제산업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서울시와 봉제협회는 전국 패션의류학과 학생들과 봉제장인들이 함께하는 ‘상상패션위크’를 성황리에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이 행사가 지속되길 바라더라고요. 마장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권에서 유통되는 고기의 60~70%가 이곳을 거치는데 육가공의 부가가치가 상당합니다. 이에 서울시는 환경을 정비하고 ‘마장키친’을 만들어 젊은 사람들에게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도시재생사업은 전통산업과 젊은 세대의 연결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포커스를 맞춰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문 연구팀에 의뢰한 결과, 도시재생으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가 서울역, 창신동 일대만 해도 8~9만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뉴타운은 건설 일자리밖에 안 되지만 전통산업과 결합하는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봅니다.
Q.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을 벤치마킹해서 실시되는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서울시는 7년째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4년 전 재생본부가 출범하면서 사업이 더욱 본격화되었으며, 현재 133개의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께서 후보시절에 서울시를 방문해 ‘시민의 삶을 바꾸는 성공한 정책’을 둘러보았고 이를 정부의 정책으로 가져가서 전국적인 모델로 확산시키겠다고 공약했는데, 그게 바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입니다.
지방의 상황은 더욱 힘듭니다. 특히 원도심이 상당히 피폐해져 있어요. 이런 원도심에 적용할 수 있는 게 바로 도시재생입니다. 정부는 원도심의 활력을 키우는 것을 중시합니다.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지역민의 일자리를 만들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도시재생이 가장 적합한 툴이라고 생각해 이를 전국 모델로 확산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작년에는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 때문에 서울시가 그 사업에서 빠졌는데요. 올해는 함께 할 예정입니다. 정부와의 협업을 통해 재정을 지원받고, 서울시가 시작했기 때문에 전국에 선도적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생각입니다. 도시재생 전문가, 활동가 등 인적자원도 육성해서 지방에 보내는 등 지방과도 협업해 나갈 계획이고요.
Q. 마지막으로 서울 시민들에게 도시재생 사업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씀이나 당부 사항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도시재생은 재개발 뉴타운 사업과 달리 비포 앤 애프터(before & after)를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싹 쓸어버리고 ‘헌집 줄게 새집 다오’식의 개발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니까요. 도시재생은 사람이 중심이고 본질입니다. 시설물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작업이고,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것이 바로 도시재생이죠. 도시재생은 지역이 가진 정체성과 역사성을 존속시키고 그 안에 공동체를 회복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을 활기차게 만드는 것, 지역 주민들이 행복감과 자존감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시민들이 함께 도시재생의 본질을 공유하고 그 가치에 대해서 평가해주셨으면 합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역시 서울시와 서울시민의 파트너로서 지금까지 잘 해오셨고 현재도 세운과 서울역, 창신동 일대 등에서 함께 협업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신도시 뉴타운 개발 업무를 주로 해왔던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이제는 패러다임을 전환해서 도시재생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고, 전현직 CEO들도 도시재생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 만의 재생모델을 찾아서 서울시와 협업하면서 잘 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공공디벨로퍼로서의 역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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