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 만나다] 


세상을 물들이는 자연의 색
차윤숙, 박원태 작가

 



작가 부부가 만든 ‘차앤박콜렉션’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골짜기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포장도 채 되지 않은 1차선 도로를 달리다 이곳이 맞나 싶을 때쯤, 이들의 작업실 겸 갤러리, 매장이 나타났다. 1년에 한 번 있는 오픈스튜디오를 앞두고 건물을 재정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손수 덖은(로스팅한) 커피를 내려준다.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이들의 작업은 답답하기보다 충만해보였다.



천연염색의 새로운 경지

회화를 전공한 차윤숙&박원태 부부는 출강과 작품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바삐 움직이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작가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이들이 안성면 골짜기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97년이다. 아예 시골에 안정적인 작업공간을 짓고,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차윤숙 작가는 취미삼아 해오던 천연염색으로 옷과 가방을 지어 팔았다.


동양화의 방식처럼 자연에서 염료를 찾고 정형화된 천연염색의 방식을 탈피해 캔버스에서 원단으로 작품의 무대를 옮겼다고 해야 할까, 이들의 콜렉션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쪽(인디고-청바지에 사용되던 푸른 염료) 염색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직접 쪽을 재배하고 있다. 사시사철 피고지는 꽃들, 각종 한약재 또한 좋은 도구다. 자연에서 얻은 수십 가지의 색깔을 배합해 드로잉 기법으로 천에 그림을 그려내듯 염색한다. 같은 디자인이라도 미세하게 붓질과 색감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똑같은 옷과 가방은 한 점도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화 중에서도 채색화를 전공해 물감을 다루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천연염색을 떠올렸죠. 종이에 그리던 그림을 천에 그리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남편은 반대가 심했어요. 작가로서의 자존심도 있고, 인사동에 갤러리가 많아 아는 얼굴이 본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자리를 펴자마자 옷과 가방이 날개 돋친 듯 팔렸어요. ‘완판’의 기쁨과 함께 잘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박원태 작가는 이날 이후 아내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확신을 행동으로 바꿀 줄 아는 아내에게 대표직도 맡겼다. 자연스럽게 분업이 이뤄지고 서로 잘 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싸우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인테리어와 목공, 돌을 골라내고 농사짓는 일 등 노동에 가까운 일은 남편이, 섬세한 터치와 예술적 감각이 필요한 일은 주로 아내가 맡는다.

 


자연과 작품의 경계가 없어지다

그렇다고 박 작가가 작품활동을 접은 것은 아니다. 그는 한지의 원료인 딱나무를 이용한 회화 혹은 조형 작품을 꾸준히 내놓고 개인전도 열고 있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적인 닥종이와 캔버스를 결합해 자연의 심상을 담아낸다. 화폭은 물론이고 마당의 정원, 철마다 피고지는 꽃나무, 좌탁과 천연염색 소품이 놓인 목가구도 그의 작품이다. 삶과 맞닿은, 경계가 없는 창작활동이다.


“풀을 쑤기 위해 가마솥에 장작불을 피우는 것부터 염색물에 천을 담가 발로 밟고 붓으로 채색해 만듭니다. 거의 손으로 하는 고되고 느린 노동이지만 저희 옷과 침구는 그래서 다르다고 해요. 피부질환, 특히 아이들 아토피에 효과가 있어요. 오픈 스튜디오 때 저희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찾아주시는 분들을 볼 때면 보람이 큽니다.”


차윤숙씨는 옷을 만들 때도 자기만의 색깔을 입힌다. 옷의 마감도 똑 떨어지기보다는 자연스럽고 빈티지한 느낌을 담고, 몸에 딱 맞는 핏이 아니라도 멋스러움을 살린다. 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편하고 피부에 닿는 촉감이 좋아서 단골이 많다고 한다. 차앤박콜렉션은 서울 인사동에도 직영매장을 냈지만 이들은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일단 생산할 수 있는 수량에 한계가 있고, 대량생산으로 지금까지의 작업방식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다. 대신 해외로 눈을 돌렸다. 수년째 파리 ‘메종 오브제’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고 정식으로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큰딸 하연이가 어려서부터 동생 옷을 만들어 입히는 등 감각이 뛰어나서, 차근차근 실무를 익히며 부부를 돕고 있고, 좀 더 경험을 쌓아 패션스쿨에 진학시킬 예정이다. 아이를 위해 시골에 자리잡은 후 20여 년이 지나 다시 함께 해외로 진출하는 셈이다. 무엇도 억지로 계획하거나 계산기를 두드려 맞추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들의 삶은,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이들에게도 멋지고 큰 영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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