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톡톡][집으로] 보일러가 없던 옛 선조들의 지혜로운 겨울나기

2021-04-15


[집으로]

보일러가 없던 옛 선조들의 지혜로운 겨울나기




과거 선조들의 겨울은 음력 10월에서 12월, 양력으로는 11월에서 1월을 말한다. 조상들은 1년을 달의 운동 주기에 따라 12달로 나누었다. 이것이 음력이다. 또한 해의 운동주기에 따라 24절기로 나누었다. 이것이 양력이다.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 절기인 입동(11월 7~8일 경)이 겨울의 시작이다. 예부터 우리말에 겨우살이니 월동이니 하는 말이 있었다는 것은 조상들에게 겨울은 그 만큼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 옛 조상들은 춥고 긴 겨울을 과연 어떻게 견디며 살아내었을까.


그들의 지혜로운 겨우살이를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혹독한 월동 준비

겨울을 넘긴다는 의미의 월동(越冬). 조상들의 월동준비에는 땔감 준비, 이엉 엮기, 김장 등이 있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려면 땔감이 충분해야 한다. 그리고 어렵사리 마련한 땔감으로 난방에 효율을 높여야 했다. 그래서 발전한 것이 온돌 문화이다.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온돌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 방바닥에 깔린 구들장이 달구어져서 방을 골고루 덥히는 난방구조이다.


아무리 불을 잘 지펴도 집 구조가 단열이 잘되지 않으면, 열이 빠져나가 비효율적인 난방이 된다. 이를 대비하여 우리 조상들은 먼저, 겨울이 오기 전에 지붕을 수리했다. 바로 이엉 엮기이다. 지붕으로 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 우리 전통 건축은 온돌방 앞뒤 혹은 좌우로 마루 공간이 있었다. 이 공간을 켜라고 하는데 이 켜에 따뜻한 공기를 가둠으로써 외기의 찬바람을 한 번 걸러주어 실내 열 환경이 합리적으로 잘 유지되게 하였다.


더불어 집을 지을 때는 겨울에 볕이 잘 들어오도록 남향으로 지었다. 또한 주택의 전면은 담장을 거의 쌓지 않아 겨울철, 햇볕이 막힘없이 들어오게 하였고, 뒤쪽인 북향은 담장을 높이 쌓아 겨울 북풍을 막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따듯한 나눔의 문화

조상들은 과학적인 측면에서 이엉을 엮고 온돌과 집 구조를 잘 설계함으로써 추위를 막았다면, 인륜적인 측면에서 양한 나눔의 문화를 통해 이웃과 함께 추위를 견디는 지혜를 실천하였다.


김장은 단순한 발효식품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가 나눔을 통해 서로 돕고 하나가 되는 문화 전통이다. 2013년 김장과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는데, 이는 김치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은 물론 함께 담그고 나누는 문화적 전통이 인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겨울철 이웃과 함께 정을 나누는 음식문화 중에는 치계미가 있었다. 마을주민이 모두 모여 벌였던 경로잔치이다. 사또에게 좋은 반찬을 차려준다는 의미의 치계미가 마을 노인들에게 잘 차려진 밥상을 봉양한다는 뜻으로 바뀐 것이다. 입동, 동짓날, 섣달 그믐날이면, 마을 노인들에게 건강식, 보양식을 해서 바쳤는데, 이때 마을주민 모두 참여하였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도 동짓날이 되면 먹는 동지팥죽 역시 겨울철에 함께 나누는 음식 중 하나였다. 동지 무렵은 팥이 수확되는 시기라 서민들도 비교적 팥을 구하기 수월했다. 무엇보다 팥은 영양이 풍부한 곡물이라 팥죽은 겨울철 영양식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 동지팥죽은 궁중이나 대갓집, 절 등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구제음식이기도 했다.


겨울철 복식

눈이 많은 지역에는 설피라는 넓적한 덧신을 만들어 신었다. 특히, 겨울철 양식을 얻기 위해 사냥을 갈 때 설피를 신발에 덧대어 신으면, 엄청나게 쌓인 눈길을 걸어도 잘 빠지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일종의 방한모인 남바위는 남녀노소 공용이며 이마, 귀, 목덜미를 덮을 수 있는 형태이다. 턱과 볼을 감싸는 볼끼를 따로 착용하기도 했다. 볼끼가 남바위에 붙어 있는 것은 풍차라고 했는데, 볼끼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뒤로 젖혀 맬 수 있었다. 그런데 남바위와 풍차 모두 정수리 부분이 뚫려 있다. 그 이유는 ‘한두난족’의 지혜를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한두난족은 건강을 위해 발은 따뜻하게 하고 머리는 차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정수리 쪽이 뚫려 있는 방한모를 썼던 것이다.


짐승의 털로 만든 배자도 훌륭한 방한복이지만, 양반이나 부유층이 아니라면 아무나 입을 수는 없었다. 일반 서민들은 하절기 비옷인 도롱이를 겨울옷으로 덧입었다. 또 누비옷이나 누비버선 등을 만들었다. 누비 바느질법은 바늘땀과 바늘땀 사이에 생기는 층에 공기를 가두어 옷의 보온성을 높이는 것이다. 한지로 방한복을 만들어 입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특히, 변방의 군사들에게 한지로 만든 옷을 보급하여 겨울을 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고성능의 보일러, 전기히터, 따듯한 방한복으로 걱정 없이 겨울을 보내는 현대인들에게는 선조들의 힘겨운 겨울나기가 선뜻 와 닿지는 않겠지만, 여름부터 준비하고 다양한 지혜로 역경을 헤쳐 나가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본을 보였던 조상들의 삶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해 보다 추울 올 겨울, 우리가 본받아 지켜야할 유산과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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