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한국의 주거역사 ‘움집에서 아파트까지’
예로부터 전 세계 다양한 민족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을 고려해 적합한 재료와 건축법으로 집을 지어왔다. 이는 각 나라만의 주거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의 주거문화는 전 세계의 나라와 차별된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온돌문화와 단지형 아파트도 그중 하나다. 이번 시간을 통해, 우리나라의 주거문화 발전 과정과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초의 주거 형태, 움집
최초의 인류는 동굴과 같이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을 이동해가며 보금자리로 이용했다. 이후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최초 집터는 공주 석장리 유적지이다. 기원전 약 2만 년에서 2만 8000년경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당시에는 나뭇가지나 가죽 등을 이용해 임시로 간단하게 지은 막집 형태를 띠고 있다.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단순 움집은 원형의 땅을 파고 지붕을 올리는 형태로 변화해 갔다. 점차 추위와 더위에 강한 주거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움집의 모양과 크기는 세대원의 수나 신분에 따라 달라졌다. 초창기 움집은 둥근 형태였으나, 점차 장방형으로 변해갔다. 움집 내부에는 난방과 취사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로가 있고, 화재 예방을 위해 지붕 위 천장은 구멍이 뚫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움집 주변에는 목책과 환호를 만들었다. 배수로인 환호는 빗물 유입 방지를, 목책은 동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예상한다. 청동기 시대 이후 무기가 다양화되고 부족 간 세력 경쟁이 심화하면서, 방어를 위한 필수적인 환경이었을 것이다.
수천 년간 지속‧발전한 온돌
온돌은 방바닥에 깔린 돌을 데워 방을 데우게 한 난방시설을 뜻한다. 이는 ‘구운 돌’이라는 뜻에서 ‘구들’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온돌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로 보고 있다. 평안북도 영변 세죽리에서 발견된 구들은 기원전 2~3세기의 것으로, 고조선에서 전해진 온돌로 추정된다.
사실 온돌은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일례로 유럽의 로마 시대 유적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오며 온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 온돌문화가 정착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럼 왜 로마의 온돌은 사라졌고, 한반도의 온돌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각 나라의 건축문화 형태와 관련이 있다.
주거구조를 살펴볼 때, 유럽은 위로 쌓는 구조지만 우리는 단층 구조가 발달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난방은 물론 취사까지 할 수 있는 온돌문화는 더디게 발전했다. 고려시대 후반에야 방 하나 정도를 데울 수 있는 온돌시스템이 마련됐고, 조선시대 후기에서야 온돌이 대중에 보편화되었다.
아파트 공화국 아닌 다양한 주거문화로 노력 필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서울 충정로에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가 생겼다. 바로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충정아파트다. 광복 이후, 급속한 도시로의 인구 유입은 아파트 건축을 가속화시켰다. 1959년 종암아파트가 건축되고, 1965년 한국 최초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가 완공됐다.
1960년대 아파트 건설은 서민을 위한 주거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강남 개발을 기점으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투기와 재테크의 수단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이런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쾌적한 환경과 편의 시설이 갖춰진 단지형 아파트의 선호도가 높아지게 된 것이다. 현재, 아파트는 전국 전체 주택의 60%를 넘어서고 있다. 비록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나, 한 나라 주택의 60%에 육박할 만큼 대표 주택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에 한 프랑스인은 서울의 아파트를 보며 군사 기지냐고 묻기도 했고,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 ‘론리 프래닛’에서는 서울을 ‘영혼 없는 도시’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제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주택문화의 발전을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이 더는 투기목적이 되지 않도록 정부‧지자체‧국민 모두가 새로운 시각으로 주택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후손들이 아파트뿐만 아니라 온돌, 한옥, 목재주택 등 다양하고 개성 있는 주거문화 속에서 더욱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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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거역사 ‘움집에서 아파트까지’
예로부터 전 세계 다양한 민족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을 고려해 적합한 재료와 건축법으로 집을 지어왔다. 이는 각 나라만의 주거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의 주거문화는 전 세계의 나라와 차별된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온돌문화와 단지형 아파트도 그중 하나다. 이번 시간을 통해, 우리나라의 주거문화 발전 과정과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초의 주거 형태, 움집
최초의 인류는 동굴과 같이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을 이동해가며 보금자리로 이용했다. 이후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최초 집터는 공주 석장리 유적지이다. 기원전 약 2만 년에서 2만 8000년경 구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당시에는 나뭇가지나 가죽 등을 이용해 임시로 간단하게 지은 막집 형태를 띠고 있다.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단순 움집은 원형의 땅을 파고 지붕을 올리는 형태로 변화해 갔다. 점차 추위와 더위에 강한 주거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움집의 모양과 크기는 세대원의 수나 신분에 따라 달라졌다. 초창기 움집은 둥근 형태였으나, 점차 장방형으로 변해갔다. 움집 내부에는 난방과 취사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로가 있고, 화재 예방을 위해 지붕 위 천장은 구멍이 뚫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움집 주변에는 목책과 환호를 만들었다. 배수로인 환호는 빗물 유입 방지를, 목책은 동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예상한다. 청동기 시대 이후 무기가 다양화되고 부족 간 세력 경쟁이 심화하면서, 방어를 위한 필수적인 환경이었을 것이다.
수천 년간 지속‧발전한 온돌
온돌은 방바닥에 깔린 돌을 데워 방을 데우게 한 난방시설을 뜻한다. 이는 ‘구운 돌’이라는 뜻에서 ‘구들’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온돌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로 보고 있다. 평안북도 영변 세죽리에서 발견된 구들은 기원전 2~3세기의 것으로, 고조선에서 전해진 온돌로 추정된다.
사실 온돌은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일례로 유럽의 로마 시대 유적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오며 온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 온돌문화가 정착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럼 왜 로마의 온돌은 사라졌고, 한반도의 온돌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각 나라의 건축문화 형태와 관련이 있다.
주거구조를 살펴볼 때, 유럽은 위로 쌓는 구조지만 우리는 단층 구조가 발달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난방은 물론 취사까지 할 수 있는 온돌문화는 더디게 발전했다. 고려시대 후반에야 방 하나 정도를 데울 수 있는 온돌시스템이 마련됐고, 조선시대 후기에서야 온돌이 대중에 보편화되었다.
아파트 공화국 아닌 다양한 주거문화로 노력 필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서울 충정로에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가 생겼다. 바로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충정아파트다. 광복 이후, 급속한 도시로의 인구 유입은 아파트 건축을 가속화시켰다. 1959년 종암아파트가 건축되고, 1965년 한국 최초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가 완공됐다.
1960년대 아파트 건설은 서민을 위한 주거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강남 개발을 기점으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투기와 재테크의 수단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이런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쾌적한 환경과 편의 시설이 갖춰진 단지형 아파트의 선호도가 높아지게 된 것이다. 현재, 아파트는 전국 전체 주택의 60%를 넘어서고 있다. 비록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나, 한 나라 주택의 60%에 육박할 만큼 대표 주택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에 한 프랑스인은 서울의 아파트를 보며 군사 기지냐고 묻기도 했고,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 ‘론리 프래닛’에서는 서울을 ‘영혼 없는 도시’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제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주택문화의 발전을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이 더는 투기목적이 되지 않도록 정부‧지자체‧국민 모두가 새로운 시각으로 주택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후손들이 아파트뿐만 아니라 온돌, 한옥, 목재주택 등 다양하고 개성 있는 주거문화 속에서 더욱 행복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