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
서초네이처힐 3단지 반찬동아리 마녀손맛
허우대는 화려하지만 속 빈 강정 같은 음식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는 음식을 만드는 주부들이 있다. '요섹남'이 떴다지만 여럿이 흥겹게 만든 엄마들의 손맛만 할까. 신선한 제철 재료로 건강한 반찬을 만드는 ‘마녀손맛(마을 여자들의 손맛의 줄임말)’ 회원들은 반찬뿐만 아니라 이웃과 정을 나누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서초구 우면동 서초네이처힐3단지 주부들이 그 주인공이다.
맛있는 반찬의 시작은 재료에서부터
‘마녀손맛’의 반찬 맛에는 마법사의 요술가루나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 같은 것은 없다. 비결은 장보기부터 음식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놀랍도록 투명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간단, 빠름을 지향하는 편의주의가 들어설 틈도 없다. 매주 목요일 아침, 마녀들이 과천의 직거래장터인 바로마켓을 찾아 식재료를 조달한다. 팔도에서 새벽같이 올라온 신선한 친환경 재배방식의 먹거리가 즐비하다. 강화의 순무, 용인의 토마토, 횡성의 더덕 등이 생산자의 얼굴과 연락처를 단 채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신은정(46세), 박현주(41세), 양남진(40세) 씨가 장만한 재료로 만들 반찬은 부추전, 산나물, 감자고추장찌개, 달걀장조림이다. 흙냄새 물씬 풍기는 감자부터 싱그러운 초록빛의 부추, 싱싱한 달걀 등이 장바구니에 담긴다. 2015년 초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5가족 14인분의 반찬 세 종류, 국 한 종류를 만드는 날이 마을 잔칫날이다. 주부 9년차라는 양남진 씨도 언니들의 손맛에 반해 동아리에 들어왔단다.
“음식솜씨 좋은 은정언니랑 현주 언니가 음식을 만드시고 저희 동생들이 번갈아 옆에서 돕고 있어요. 돕는다고 하기 보단 솜씨를 배우죠. 전 ‘마녀손맛’표 잡채하고 채소육개장 맛에 반해 동아리에 들어왔어요!”
신은정 씨의 부엌에 모여 재료들을 식탁에 펼치자 주은혜(35세) 씨가 익숙하게 일손을 보탠다. 주부들이 모이니 부엌의 커다란 솥에서 구수한 멸치육수와 칼칼한 고추장이 보글보글 어우러진다. 고소한 부추전 냄새와 데친 산나물 향기가 그윽하다. 새내기 진형선(44) 씨의 이야기는 거의 ‘간증’ 수준이다.
“저는 한 달 반 전에 마녀손맛에 들어왔는데요.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린 언니들의 반찬에 반해서 동아리에 들었는데 위염도 나았어요. 음식이 약이란 말을 실감했죠.”
‘마녀손맛’을 이끄는 은정 씨와 현주 씨가 앞다퉈 자랑하는 ‘비법’은 장맛이었다. 된장과 고추장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토종씨앗을 지키고 농약을 쓰지 않는 토종농사법을 고수하는 달마지마을의 것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토종재료를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것이 맛의 비결. 재료며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정성이 더해진다. 이날의 주재료 중 하나인 산나물은 현주씨의 사촌오빠가 소백산 자락에서 채취해 보내준 것이라고 한다.
“제철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도 ‘마녀손맛’의 지향이죠. 매달 회의를 거쳐 한 달 메뉴를 공유하고 SNS 채널을 통해 조리법도 공개하는데 반응이 좋아요.”
은혜 씨도 마녀손맛표 반찬을 먹으면서 가족의 식습관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식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며 말을 보탰다. 아침부터 반찬을 만들다 점심 때가 되자 진한 육수에 말아낸 소면에 열무김치, 부추전으로 상을 차려 함께 밥을 먹는다. 갓 만든 반찬의 맛은, 두말할 것 없이 꿀맛이다.
마녀손맛이 만들어진 유래
서초네이처힐3단지 주부들은 ‘마녀손맛’을 비롯해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펼치고 있다. 3단지 입주가 시작되던 2013년, 단지 내 작은 도서관인 ‘꿈 찾는 도서관’에서 주부들의 그림책 동아리 ‘동그라미’가 시작되었다. 육아와 살림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 소통과 성장에 목말랐던 주부들은 심리·역사·철학·문학 등의 분야를 아우르는 독서동아리 ‘함께 클래?’도 만들었다. 책으로 허기진 마음을 채워가면서 몸의 양식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해결하기 위해 ‘마녀손맛’이 만들어졌다.
주부들의 사랑방이자 동아리방인 ‘꿈 찾는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재주가 있는 주민들이 우클렐레, 보드게임 등을 가르치고 교육비의 일부를 기부해 도서를 구입했다. 주부들은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자원봉사로 도서관 사서 역할도 해낸다. 또한 공동의 관심사를 담은 강의도 기획해 주부들의 학구열을 충족시키고 있다. 이승주(37세) 씨는 토론과 공부를 통해 ‘스토리텔러’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함께 해내면서 주부들의 꿈은 손에 잡히는 보람으로 진화하고 있다.
“함께 밥을 먹는 ‘식구’들 사이의 연대감처럼 함께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있어요. 그래서 더 많은 이웃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동부엌을 꿈꾸게 됐어요. 공동체 부엌에서 함께 만드는 공동체 반찬, 괜찮지 않나요?”
신은정 씨의 말에 ‘마녀들’이 공감의 웃음을 짓는다. 마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이들은, 서로를 비추는 맑고 진실한 거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