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기행] 


건축미 돋보이는 슬로베니아 루블랴냐


 




유럽의 수도들은 한 나라의 수도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소도시가 많다. 서울과 비교하는 한국인의 심성 탓일 게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도 그런 도시다. 도심 한가운데로 흐르는 류블랴니차 강 주위로는 운치 넘치는 바, 거리 음악가들의 공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좁은 운하 같은 강 줄기를 따라 유람선이 오가고, 올드타운에는 한 나라의 오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작은 도심을 한껏 빛내준다. 무엇보다 류블랴나 고성에 올라서는 것은 이 도시의 최고 매력이다.



류블랴나의 랜드마크, 프레셰르노프광장

슬로베니아 류블랴나(Ljubljana)는 버스역과 기차역이 거의 붙어 있다. 아름다운 호수 마을, 블레드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 셀리차 호스텔(www.hostelcelica.com)까지 걷는다. 감옥을 숙소로 탈바꿈시킨 곳으로 화려한 그래피티가 시선을 끈다. 걸어서 시내 구경에 나서자 류블랴니차강을 만난다. 류블랴니차강은 류블랴나 서쪽 브르흐니카(Vrhnika)에서 발원해 류블랴나를 거쳐 사바 강으로 이어진다. 이 강을 경계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뉜다. 구시가지에는 류블랴나 성을 둘러싼 중세 건축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신시가지에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프레셰르노프(Presernov) 광장이 있다.


프레셰르노프 광장으로 간 이유는 ‘프란츠 프레셰렌(Preseren, 1800~1849)’을 만나기 위해서다. 국민 시인, 프레셰렌의 ‘축배’는 슬로베니아 애국가 가사가 되었고 지폐에도 그의 얼굴이 있다. 공휴일인 프레셰렌의 날(2월)에 시민들은 그의 동상 밑 계단에 앉아 시를 읽거나 전시를 본다. 그의 ‘평생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는 유명하다. 변호사였던 그는 33세 때, 줄리아 프리믹을 보고 첫 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부잣집 상인의 딸로 감히 넘볼 수 없는 신분이었다. 그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사랑을 가슴 속에만 간직했다. 아나 젤롭시크를 만나 아이 셋까지 낳았으나 끝내 결혼은 하지 않았다. 48세에 죽을 때, ‘줄리아를 단 한 번도 잊지 않았다’라고 고백했으며 짝사랑의 열정을 수십 편의 시로 남겼다. 시인의 동상도 평생 사랑했던 여인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다. 시인의 시선을 대각선 방향으로 따라가면 2층 창문에 줄리아의 테라코타 상이 있다.



프레셰르노프 광장의 여자 동상과 프란치스칸 성당

광장의 동상 북쪽에는 붉은 색의 프란치스칸 수태고지 성당이 있다. 1646년~1660년, 오래된 교회가 있던 자리에 이탈리아의 조각가 프란체스코 로바(Francesco Robba, 1698~1757)가 주체가 되어 초기 바로크 양식의 성당을 건축했다. 1895년, 대지진으로 파손된 프레스코화들은 1936년, 슬로베니아의 인상파 화가인 마타이 스테르넨이 다시 그렸다. 프레셰렌 동상 뒤에 그의 뮤즈를 형상화해 상의를 입지 않은 여자가 서서 하늘로 손을 뻗는 동상이 있다. 프란체스칸 성당에서는 성당 주변에 세워진 여성의 반 누드 동상이 선정적이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묘안은 주변에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무성한 잎 때문에 성당에서 뮤즈상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교회에서도 동상을 세워두는 데에 찬성했다고 한다.



류블랴니차 강을 잇는 트리플 교와 재밌는 다리들

메인 광장에서 구시가로 들어가려면 루블라챠 강을 잇는 4개의 다리 중 최고로 꼽히는 삼중교 토모스토교라를 건너야 한다. 목조다리가 1280년 화재로 유실된 후 1657년 재건축되었고 1842년,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반니 피코가 현재의 석조 다리 원형을 갖추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로 병목현상이 심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2년(1931~1932)에 걸쳐 보행자 전용 다리를 양쪽에 추가해 현재와 같은 세 갈래 형태로 만들었다. 슬로베니아의 대표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Jože Plecˇnik, 1872~1957)의 빼어난 작품이다. 그 외에도 부처스(도축인들이 모여 고기 장사를 했기 때문) 다리에는 사랑을 이뤄준다는 자물쇠와 두꺼비 조형물이 있다.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다리에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는 강 밑으로 던져 버린다고 한다. 1900년대에 만들어진, 나라의 상징 ‘용’을 형상화한 다리도 있다.



로마 때부터 시작된 ‘화이트 류블랴나’

올드 타운은 신시가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옛 향기가 물씬 풍긴다. 류블랴나의 기원은 BC 5세기, 5백년간 지배한 로마의 에모나(Emona)제국이다. 시내 곳곳에 당시의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8세기에는 바이에른과 프랑켄에 속했으나 프랑크왕국 치하 카롤링거 왕조(751~843)에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서유럽으로 편입되었다.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의 지배를 받으며 흰색의 교회와 저택이 많이 들어섰기에 ‘화이트 류블랴나’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계 대전을 겪고 유고슬라비아가 되었고 1991년 6월에 독립했다.


올드 타운의 번화가는 메스티니 골목이다. 시청사 앞 노비 광장에는 멋진 ‘세 개의 카르니올란(Carniolan) 강들의 분수대(1751, 조각가 로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 골목에는 지질학자 요한 바이크하르드 폰 발바소르(1641~1693)의 집이 있다. 그는 1689년 카르니올라 공국의 영광이라는 백과사전을 출판했으며 뱀파이어에 대한 최초의 문서도 남겼다. 시청사에서 반대편 골목으로 나가면 류블랴나에서 가장 높은 종탑이 있는 성 제임스 성당이다.


류블랴나에서 내로라하는 곳은 류블랴나 성(www.ljubljanskigrad.si/en)이다. 케이블카를 타거나 메스티니 골목에서 좁은 옛 길을 따라 오르는 방법도 있다. 좁은 골목에는 깊은 연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은 첫 눈에도 결코 화려하게 치장되지 않았다. 성은 9세기에 처음 세워졌지만 1511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17세기 초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5~16세기에는 오스만족의 침략을 막는 요새로, 17~18세기에는 군사 병원 및 무기 저장고 역할을 했다. 지금은 역사 전시관, 웨딩홀, 전망대 등으로 사용된다.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서면 오밀조밀한 붉은 지붕들 사이로 류블랴니차 강이 흐르는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 1~2% 부족하지만 도시와 잘 어울리는 소박한 조망이다.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의 빛나는 건축물들

성을 내려와 슈즈메이커 다리를 건너면 대학거리다. 1810년에 설립된 류블랴나 대학교 외에도 멋진 건축물들이 많이 있다. 1941년 지어진 세련된 국립 & 대학 도서관은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의 작품이다. 그가 류블랴나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한데 삼중교, 부처스교, 코블러스교, 크리잔케 야외극장, 야외 시장 건물 등 그의 작품은 부지기수다. 그는 1895년의 대지진 이후 도시의 주요 건축물을 재건했다. 19세기 말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 많은 이유다. 그러나 살아생전 플레츠니크는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공산주의 치하,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무관심 속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노년을 보냈다.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의뢰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고 85세에 쓸쓸히 사망했다.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이 플레츠니크의 역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이후 그의 작품은 슬로베니아의 10센트 동전에 그려졌다. 그의 탄생 140주년(2012년 1월 23일)에는 대표작인 삼중교가 구글 로고로 그려졌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메인 광장과 강변길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노래가락이 울려 퍼지는 강둑에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는 관광객 일색이다. 상큼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터키 골목이 있다. 골목에 울려 퍼지는 재즈 레코드 가게 앞에서 한참 동안 음악에 빠져든다. 숙소 앞, 현대적인 작품이 많은 공원 벤치에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악을 맞추는 모습을 바라본다. 유럽 어디에서나 흔한 거리 악사들의 음악이 아니다. 여행객의 긴 시름이 애환으로 전해지는 듯, 진한 음악 선율이 마음을 울린다.


*Travel data

교통편: 직항 항공편은 없다. 한국과 직항으로 이어지는 가장 가까운 공항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항. 혹은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서 이동해도 된다. 인천-이스탄불은 주 11회 매일 한 편 이상 운항한다. 이스탄불-류블랴나까지도 매일 직항이 운항된다. 이스탄불~류블랴나는 2시간15분.


현지교통: 걸어 다니면 된다. 시에서 운영하는 전기 차량 ‘KAVALIR’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운전기사에게 손짓을 해 차를 세우고 목적지를 말하면 된다.


음식: 올드타운 쪽을 비롯해 식당은 다수 있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지만 바가지 상흔도 있으니 유의. 강 옆의 아이스크림 집이 유명하다. 대학근처의 피자집(Pizzeria Ljubljanski Dvor)도 기억해두면 좋다.


숙박정보: 호스텔을 이용하면 매우 저렴하다.


무료 워킹 투어: 프리셰렌 광장에서는 매일(11시, 오후 2시, 2시간 소요) 무료 워킹 투어가 진행된다. 관광객들에게 받는 팁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06336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로621

(대표전화 : 1600-3456)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Seoul Housing & Communities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