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시선]

[김광현 교수의 주거론] ① '호간'에서 배우는 주택과 주거












김광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주택과 주거는 얼마나 다를까? 미국의 남서부 지역에 살았던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Navajo)족이 호간(hogan)에 대해 가졌던 지혜에서 그 차이를 읽을 수 있다. 호간은 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방이 하나인 참 단순한 집이지만, 나바호족을 상징하는 집이다. 나무 기둥에 통나무를 끼워 벽을 만들고 그 위에 통나무를 내쌓아 지붕을 만든 다음, 단열재 역할을 하도록 바깥 면 전체에 진흙을 발랐다. 


나바호족의 어른들은 호간을 두고 그들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호간이 없으면 너는 계획을 짤 수 없다.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미래를 위해 다른 것을 계획할 수 없다. 먼저 호간을 지어야 한다. 호간 안에서 앉게 되고 계획이 시작된다.” 지금 우리 눈으로 보기에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집 하나를 짓는데, 뭐 그리 대단한 게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의 말속에는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주택과 주거의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호간을 지으면 ‘주택’이 생긴 것이다. 그렇데 호간을 지어야 밖에 나갈 수 있고 그때부터 비로소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미래를 계획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거’다. 우리가 아파트를 샀다고 하자. 그러면 주택을 산 것이지 주거를 산 것이 아니다. 주거는 주택에 살면서 이웃과 자연을 만나고 점차 생활을 형성해 가야 비로소 얻어진다. 

이런 것을 학술적으로 말할 때 집짓기는 삶 그 자체이며 살아가는 방식을 짓는 것, 집은 생활에 질서를 부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여한다고 어렵게 말한다. 그러나 집에 대한 어떤 논의도 집이란 집이 있어야 오래 지속되는 행복을 꾸려갈 수 있다는 것, 곧 주거에 걸려 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국민이 집에서 주거로 앞날의 삶을 계획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주택을 전문적으로 계획하고 지어야 하는 공적 기관의 첫째 임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집을 둘러싸고 아주 우울하다. 실수요자들인 3040 세대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도 집을 짓기는커녕 집을 살 기회를 잃어 가고 있다. 전문직 고소득 맞벌이 부부는 아이가 없더라도 월급에 각종 수당, 복지포인트 등을 착실히 다 끌어모으고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갚으면, 다시 말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영끌 대출’하면 집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들은 과연 폭등하는 집값에 대응하며 무주택자를 벗어날 수 있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이 시대의 호간인 아파트, 빌라, 다세대주택 등을 두고 나바호족 어른들이 한 이런 말을 우리 사회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들려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시대의 호간을 마련할 수 없어서 많은 사람이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미래를 위한 무언가를 계획할 수” 없게 되었다. 집은 인간에게 쉼과 행복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데, 그 집이 넘지 못할 사다리요 미래의 단절이 되고 말았다. 주택이 없으니 주거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주택은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보편적 재화가 아니다. 먼 옛날에는 집이란 사는(住) 집이었지만, 지금은 팔고 사는(買) 집이 되어 버렸다. 집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부동산 상품이고 소비재다. 집이 오로지 사는(住) 집이라면 ‘주택 매물’이라는 말이 생겨날 리 없고, 실거래가, 매매, 유형, 평형, 가격, 세대수, 입주 연차, 용적률, 건폐율, 전세가율, 갭 가격, 임대 사업률, 월세 수익률과 같은 거래정보라는 말이 생겨날 리 없다. 

그런데도 요사이 많이 들리는 말이 있다. 집은 ‘사는(買) 것’ 아니라 ‘사는(住) 곳’이라 한다. 그러면서 정부도 정작 ‘시장’, ‘갭투자’, ‘물건’, ‘매물’이라며 ‘사는(買) 집’에 관한 것만 말하고 있다. 그렇게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곳’이라면, ‘사는(買) 집’을 ‘사는(住) 집’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방식을 국가정책은 이제까지 얼마나 제시해 왔는가? 


여기에 공공성이 강조되어 심지어 “주택은 공공재”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주택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주거의 공간이며 삶의 보금자리인 공공재다.” 주택이 주거의 공간이고 삶의 보금자리인 것은 사실이고 투기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공공재는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사고 내가 사는 내 집이 왜 공공재인가?

이제까지 주택 생산은 민간에게 떠넘겨 왔다. 민간이 주택을 생산하니 주택은 상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는(買) 집’은 개인이 알아서 샀고, ‘사는(住) 집’의 주거도 개인이 알아서 해결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은 지금까지 계속 주택매매정책이었다. 정작 우리나라에는 주택의 수량, 위치, 가격을 열심히 따지는 ‘주택정책’만 있었지, 주택은 사는 공간이며 삶의 보금자리여야 하는 ‘주거정책’을 목적으로 삼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호간은 본래 주거와 주택이라는 뜻을 다 담은 말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택은 주거이고 주거가 주택이었다. 사실 지금 우리는 집에 대하여 주택, 주거라는 용어를 참 많이 쓴다. 그런데 주택과 주거는 다른 말이다. 주택은 일반적으로 ‘살기 위한 집’이며 빌딩 타입의 한 가지다. ‘주택’은 ‘주거’를 담기 위한 바닥과 벽, 천장으로 마련된 물리적인 공간, 물리적 건물 자체를 의미한다. 좁은 의미의 주택은 단독주택, 넓은 의미의 주택은 아파트 등을 포함한다.


그런 ‘주택’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물건이고 상품이다. 여러 조건에서 매매가 가능해지려면 다 엇비슷하게 표준화된 기성품이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집은 옷으로 치면 기성복인데, 가장 흔한 기성복 주택은 아파트다. 게다가 한국의 대도시에 있는 주거는 아파트 아니면 단독주택 등 두 가지다. 다세대주택이나 빌라는 아파트를 줄인 것이고 단독주택을 키운 것이다. 더구나 집을 고르기 위해 집이 어떻게 지어지는가를 알 필요까지는 없다. ‘사는(買) 집’이 그대로 ‘사는(住) 집’이 된 것이 우리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거’는 사람이 거주하는 어떤 장소나 공간이지 건축의 어떤 형식이 아니다. ‘주거’는 이보다 훨씬 넓다. ‘주거’는 사람이 생활을 영위하는 장소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까지 모두 포함한다. ‘주거’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공간과 장소를 말한다. 건축의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므로 어떤 건축이라도 다 주거가 일어나는 배경이 된다. 학교에서도 주거가 있고 사무용 건물에도 주거가 있다. 주택은 짓는 것이지만 주거를 지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단독주택과 아파트 중간에 다른 집합 주택이 없다. 그런데 도로나 상하수도나 공원 등은 도시의 근간이라며 모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졌다. 반면에 이런 인프라가 접속되는 주택은 개인의 소유이고 개인이 책임을 졌다. 결국 국가의 주택 공급 시스템이 이런 주택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주택을 얼마나 지어서 공급하느냐가 유일한 정책적 관심사였다. 그 대신 주거에 관한 것은 모두 개인이 해결해야 했다. 주택정책은 있어도 주거정책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곳’”이라는 말을 요사이 정치인들도 즐겨 사용한다. 갑작스럽게도 ‘사는(買)’ 주택이 ‘사는(住)’ 주거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 멋진 말이 이상하게도 집을 ‘사려고(買)’ 하지 말고 주택에서 잘 ‘살면(住)’ 된다고 하는 말로 들린다. 갑자기 주택정책의 문제를 ‘주거’로 희석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새삼스레 즐겨 말하기 시작하는 ‘주거복지’의 ‘주거’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사고로는 주택도 멀고 주거도 멀다.


출처 : ⒸWolfgang Staudt [나바호족의 주택 호간(Monument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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