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경의선 숲길, 이곳에서의 산책은 행복이 된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경의선, 경성의 ‘경’과 신의주의 ‘의’를 따서 이름을 붙인 이 철로는 1906년에 개통되었다. 이름처럼 한때는 남과 북을 활발히 이어주었지만, 분단과 함께 철로 또한 멈추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고, 2016년 경의선은 시민을 위한 문화 산책로로 거듭났다. 4개의 문화 산책 구간(연남동 / 와우교 / 신수·대흥·염리동 / 새창고개·원효로)이 이어지며 도시와 자연, 문화와 문화,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진다. 군데 군데 만나게 되는 레일과 침목, 쇄석과 콘크리트 등은 100여 년 전의 기억을 간직한 듯 신비롭다.

연트럴파크
연남동 구간은 연남사거리에서 홍대입구역까지 이어진다. 주민들은 이곳을 뉴욕 센트럴파크를 빗대어 연트럴파크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젊고, 자유롭다. 푸른 잔디를 배경으로 샌드위치를 나눠 먹는 젊은 연인,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인상 좋은 아저씨,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르는 여행자들. 재미있는 가게들이 즐비하고, 공항철도가 있어 외국인들도 많이 모여든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 도착하는 숲길 우체통은 각박한 삶 속에서도 가끔씩은 여유로운 성찰이 필요함을 말해주는 듯하다.

책거리
와우교 구간은 홍대 앞 와우교에서 서강대역까지 이어진다. 구간은 짧지만 볼거리가 상당하다. 기타 치는 청년과 책을 읽는 숙녀, 책거리에 들어서면 그렇듯 낭만적인 조각상이 주민을 반긴다. 이곳엔 열차 모양의 부스들이 있는데, 인문산책, 문학산책, 여행산책, 예술산책을 테마로 책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마포구 주민이 뽑은 어른이 될 때까지 꼭 읽어야 할 100선도 유용하다. 기차가 운행되던 당시 ‘땡땡거리’라 불리던 철도건널목을 그대로 복원했으며, 곳곳에 남은 철길이 운치를 더한다.

소녀상과 소년상
신수·대흥·염리동 구간은 서강대역에서 공덕역까지 이어진다. 이곳은 특히 조용하고 평화로운데,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사념에 잠긴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산책을 이어가면 소녀상, 소년상과 마주하게 된다. 철로 위를 걷는 소녀와 철로에 귀를 대고 기차 소리에 집중하는 소년은 순수하고 재미있다. 왕벚나무,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아가 만든 울창한 숲길은 그야말로 휴식이 된다.

고갯길
새창고개·원효로 구간은 공덕역에서 효창역까지 이어진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은 친근함을 더하고, 탁 트인 전망 테라스는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경의선 숲길 중 유일한 언덕이지만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다. 옛 경의선에 대한 설명을 담은 히스토리월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과거 철마가 질주하던 이곳을 이제는 사람들이 걷는다.

선물 같은 만남
어쩌면 길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 계절과의 만남, 그리고 잊고 있던 나와의 만남. 퇴근 후 유난히 힘이 든다면, 일정 없는 휴일이 무료하다면, 한번 걸어보자. 경의선 숲길이 선물 같은 만남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