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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생활 탐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을지로
세운상가를 다시 세우다
을지로에 자리 잡고 있는 세운상가는 1층에서 5층까지로 이루어진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1970년대까지 서울의 랜드마크였다.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서 최대 호황을 누릴 당시에는 세운상가를 한 바퀴 돌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귀여운 소문이 돌기도 했다. 198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 보급이 확산되면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이곳에서 거래되었으며, 상가 주변에도 전기/전자 부품점을 비롯하여 조명용품점들이 하나씩 들어섰다.
세운상가를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상당히 양면적이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서 MZ세대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힙’한 가게들이 넘쳐났고, 그 안에는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런 낡은 건물에 젊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일까? 건물 밖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고층 빌딩들이 세워지고 있는 반면, 세운상가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아직도 그 세월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묘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 같다.
그때 그 시절 만남의 장소, 솔다방
세운상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니 입구에서부터 레트로 느낌이 물씬 나는 다방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 7080세대들에게는 추억여행을 떠나기 좋은 장소,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았던 MZ세대들에게는 낯설지만, 신기한 공간이었다. 부모님에게 종종 얘기만 들었던 다방의 모습이 전부였기에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모습을 구경하기 바빴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빈티지한 느낌의 패브릭 소파들이었다. 오랜 세월이 묻어난 주방과 연식이 있어 보이는 냉장고부터 자개장, 동양화 그림이 들어간 화분까지 인테리어 하나하나에 솔다방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가장 좋은 창가 자리에 앉으니 방문객들이 남겨 둔 방명록들이 있었다. 연인끼리 남기고 간 사랑고백, 같이 온 친구들이 그려준 얼굴 낙서, 가족과 함께한 오목까지 한 장씩 읽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렀다.
다방 방문이 처음이라 메뉴는 사장님의 추천을 받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서 상큼한 과일주스들을 추천해 주셨지만, 다방만의 특별한 맛과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 쌍화차와 커피를 주문했다.
음료가 나오기 전에 따뜻한 보리차를 주시는데 다방 문화라고 하셨다. 주문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쌍화차와 커피가 나왔다. 커피는 일반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프림이 많이 들어간 믹스커피였다. 쌍화차를 처음 먹어본다고 하니 사장님이 친절하게 맛있게 먹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노른자를 깨서 섞어 마신 쌍화차는 계피 향과 어우러져 깊이 있는 맛이 났다. 30년이 넘는 세월 시대가 바뀌어도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추억을 인화하다 망우삼림
청계천을 따라 산책하며 올라오다 보면 방문할 수 있는 인화 스캔 사진관 ‘망우삼림’은 필름카메라 사진관 답게 이름에도 많은 뜻이 담겨있었다. ‘망우삼림’은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숲이라는 의미로 대만에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를 모티브로 지었다고 한다. 사진관 앞에 있는 수많은 양의 코닥 카메라도 사진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한 몫하고 있다.
입구를 열고 들어가니 직원들과 필름 현상을 위해 방문한 고객들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고객의 대부분은 젊은층이었고, 당일 스캔이 가능하고 타 매장에 비해 저렴한 가격 덕분에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은 대기공간 오른쪽은 필름과 필름카메라를 판매하는 공간으로 나뉘었다. 그 중에서 제일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필름 서류함이었는데, 한 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손님들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뛰어난 화질의 카메라가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과 추억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그 중 대부분이 MZ세대라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을지로 노가리골목
을지로 노가리골목은 1980년대 을지로3가 역 뒷골목에 ‘을지 OB베어’라는 가게가 처음 개업하고 이후 비슷한 컨셉의 가게들이 생기면서 노가리 골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2015년에는 ‘서울 미래 유산’에 지정되기도 했을 만큼 을지로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네라고 할 수 있었다.
‘힙지로’의 탄생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을지로 노가리골목,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했던 골목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노가리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인 ‘OB베어’가 힘의 논리에 밀려 2022년 4월 강제철거 되었다. 80년도부터 인쇄소 골목 노동자들의 피로를 씻기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40년 이상을 지켜온 가게, 을지로 골목을 지키던 문화 시민들이 모여 협상도 해보았지만 실효적이지 못했고 현재는 세대 교체처럼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메뉴들을 선보이는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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