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두리] 

‘집을 엿보다’ : <소공녀>, 내 몫의 집을 가진다는 것

 

 











김소미 씨네21 기자

 



<소공녀>가 시작되면 통유리 너머로 탁 트인 풍경이 펼쳐져 있는 밝고 세련된 거실이 보인다. 고급 음향 기기와 첼로가 놓인 벽면을 마주보고 한 젊은 여성이 리클라이너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소공녀’인가? 착각은 찰나, 곧 이어 앞치마를 두르고 밀대를 세차게 밀며 주인공 미소(이솜)가 등장한다. 그는 부유한 친구의 집을 청소해주고 일당을 챙긴 뒤 쌀까지 얻어 나오는 3년차 프로 가사도우미다. 직후 등장하는 미소의 집은 바로 앞장면과는 딴판이다. 난간이 곧 부러질 것만 같은 옥외계단을 따라 한참 걸어올라가면 미소의 단칸방이 나온다. 캐리어를 탁자 대신 쓰고, 집주인이 외출하면 바퀴벌레가 벽을 가로지르는 이 좁고도 휑한 방. 미소는 그곳에 살면서 매일 적당히 노동하고 번 돈으로 한 잔의 위스키와 몇 개비의 담배를 누린다. 여기에 웹툰 작가 지망생인 남자친구 한솔(안재홍)만 있으면 미소는 진심으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미소는 자족적 인간이지만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은 곧 생존을 위협해온다. 임금은 제자리인데 담배값과 집세가 잇따라 올라버리자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미소가 택한 방법은 소거법이다. 가장 불필요한 지출은 무엇일까. 하나를 지워야 하는 이 때, 미소는 위스키를 사수하기 위해 자발적 홈리스가 되기로 한다.


 ▲ 스틸컷


거주 비용을 필수 지출에서 제외시킨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독특한 사회 보고서이자, 지나치게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도 자기만의 영속적 집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어려운 세상에 대한 우화인 <소공녀>는 미소가 하룻밤 잠을 청하기 위해 찾는 옛날 밴드 친구들의 집을 통해 사회의 여러 군상을 대변한다. 집은 그 사람이 아니지만, <소공녀>를 보고 있으면 집이 그 사람의 생활을 만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어딘가에 정주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 스틸컷

 

오래된 목조 주택에 사는 정현정(강진아)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 시부모를 모시고 함께 산다. 미소는 옛 모습 그대로 푸근히 반겨주는 현정의 얼굴에 잠시 안심하지만, 잡동사니가 가득 찬 창고 방에 가까스로 자리 잡은 현정의 오래된 키보드를 보는 순간 날이 밝는 대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방구석에 방치된 키보드, 아침이면 출근해야 하는 식구들이 화장실 앞에 일렬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에서 미소가 본 것은 불쑥 들이닥친 친구마저 거두어들이기엔 힘이 부치는 이 집의 사정이다. 물론 미소가 현정의 일상에서 고단함만 본 것은 아니다. 추운 겨울, 늦은 밤에 도착해 세부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목조주택은 낮이 밝고 고요한 햇빛 속에 잠기자 특유의 정겹고 고즈넉한 옛집의 진가를 알려온다. 미소는 그 집에 가장 어울리는 반찬, 온 가족이 먹기 좋은 멸치볶음을 해놓고 조용히 집을 나선다.

 

이처럼 저마다 판이한 생애 주기와 경제적 계급, 삶의 양식을 대변하는 친구들의 집을 방문한 미소는 숙박비에 상응하는 최선의 노동을 돌려주고 나오려 노력하지만, 매번 다른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다. 무리해서 신혼집을 사놓고는 결국 아내와 헤어지고 만 한 대용(이성욱)은 자신이 사는 공간을 감옥이라고 묘사한다. “원금 좀 포함해 이자가 100만 원. 내 월급이 190이거든. 그걸 20년 내야 해. 이건 집이 아니라 감옥이야.” 안방과 작은방, 베란다 딸린 거실, 깔끔한 화이트 인테리어로 마감된 대용의 아파트는 신혼부부가 살기 좋은 평수의 아담한 신축 아파트로서 손색없다. 그러나 미소가 방문한 그곳은 관계의 실패를 비관한 남자가 자처한 쓰레기 소굴이 되어 있다. 최정미(김재화)의 집은 한남동의 고급 주택을 연상시킨다. 평수가 넓고 2층으로 분리된 이곳을 찾은 뒤 미소는 그나마 가장 안심한 채 지낸다. “그런 집에 사니까 꼭 내가 부자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해. 기분이 안 좋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거든.” 미소가 한솔에게 고백한 대로 나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부유한 남편과 결혼한 정미는 예민하고 보수적인 남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극도로 주의하며 사는데, 어느 저녁 식사 시간에 미소가 부부 앞에서 꺼낸 과거 밴드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묘한 균열이 발생하고 만다. 다음 장면에서 정미는 미소에게 떠나달라고 주문한다. 이때 정미와 미소는 가로가 매우 긴 직사각형의 식탁에 서로 마주 앉아 있다. 미소는 정미가 자신과 가까운 맞은편에 앉거나 바로 옆에 앉지 않고, 일부러 가장 먼 반대편에 가 앉자 순간적으로 차가운 거리감을 느낀다. 정미는 남편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미소에게 권위로 대한다. 이 순간 미소에게 든든한 2층 침실을 내어줄 수 있었던 사람과 떠나달라고 가장 매몰차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미라는 사실을 집이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지만 비효율적인 디자인의 식탁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 두 사람이 멀찍이 떨어진 채 마주 앉아도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가족 구성과 이에 상응하는 라이프스타일. 그것이 곧 정미의 삶이고 미소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 스틸컷 


결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미소는 영화 말미에 캐리어를 끌고 언제나처럼 위스키 바를 찾는다. 그는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담담히 자기 몫의 위스키를 마신다. 그리고 어느 한강 둔치에 텐트를 치고 잠든다. <소공녀>의 영어 원제인 마이크로해비타트(microhabitat) - 미생물의 미소 서식지를 - 를 한 인간의 삶에 태연히 적용시킨 풍경이다. 미소의 친구들은 대체로 상식적이고 평범하지만 어딘가 공허하고 미소는 충만하지만 불안과 고독, 무엇보다 안전의 위협 속에 처해 있다. 이 불완전함 속에서 영화가 전하는 것은 취향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한 청년 세대의 새로운 태도와 낭만이 아니다. <소공녀>는 어떤 집에 살기 위해서는 그 집에 맞는 삶에 자기를 맞춘 채 살아가는 것이 불가피함을 직시하며, 주거가 곧 경제가 되는 신자유주의 사회 속 초상을 미소의 로드무비 속에 담아낸다. 그리고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던 미소의 선택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지 프레임 너머로 쓸쓸히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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