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웁쓰양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시각예술가 웁쓰양입니다. 저는 회화 작가로 출발해 현재는 멍때리기 대회와 같은 참여형 퍼포먼스, 설치, 기획 등등 시각 예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기획한 장본인이시라고요, 멍때리기 대회는 어떤 대회인가요? 



멍때리기 대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대회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멍때리기 대회는 제목이 ‘멍때리기 대회’ 그 자체인, 참여형 퍼포먼스 작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조용하고, 아무 재능이 없어도 누구나 참여해 우승까지 할 수 있는 대회입니다. 멍때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정보과잉과 수많은 자극 속에서 종일 바쁘게 사는 현재의 우리 삶에 오히려 필요한 시간이라는 역설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Q. 어떤 영감이 이 대회를 기획하게 만들었나요?





오래전 번아웃을 겪게 되었습니다. 매일 작업실에 출근해도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들이 수개월이 되자 차차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죄책감을 덜어보고자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똑같이 작업실에서 붓 한번 잡지 않고 집에 와도 불안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계획대로 실천한 하루로 바꿔버렸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계획대로 사는데 왜 계속 불안하지?’

 

이유를 고민하다가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퇴근 시간 붐비는 열차 안에서 전공책을 펴 놓고 공부하는 대학생, 영어단어를 외우는 고등학생, 업무가 안 끝났는지 거래처와 통화하는 직장인, 장을 봐서 집에 가는 워킹맘이 눈에 보이는 퇴근길 지하철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불안한 이유는 ‘내가 멈추어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다 바쁘게 살아서’는 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 바쁜 사람들을 좀 가만히 둬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은 저들도 나처럼 멈추고, 잠깐이라도 쉬고 싶은데 주변이 온통 바쁘니까 그 불안을 덜기 위해 비슷한 속도로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날한시, 한 장소에 다 같이 모여서 멍을 때리면 누구 하나 불안한 사람도 없고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상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쁜 사람들을 좀 약 올려 주고싶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저도 모르게 자주 혼자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다가 ‘멍때리기 대회’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Q. 웁쓰양 님이 예술가라는 점에 근거하면, 멍을 때리는 행위는 곧 퍼포먼스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멍을 때리는 행위가 가지는 퍼포먼스적 의미가 궁금합니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선발 할 때, 가능한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대를 선발하려고 노력합니다. 선발된 선수들에겐 모두 경기복으로 자기 직업군을 대표할 의상을 입고 오도록 요구합니다. 대회 장소에는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을 비롯해 결재서류를 든 직장인, 스포츠인, 대학생, 교복입은 청소년, 의사, 바리스타, 물류센터 직원, 택배기사, 영화관 직원 등등 다양한 직업과 나이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90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으니 작은 도시가 멈추는 모습이 됩니다. 그렇게 참여자들은 선수이면서 동시에 퍼포머로서 대회에 참여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그 멍때리는 거대 집단(움직이지 않는 커다란 점)과 그 주변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점)과의 시각적 대조를 이루게 되는데요, 이 역시 예술가로서 ‘멍때리기 대회’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입니다.


Q.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말을 할 수 없고, 미리 배포한 카드로만 소통이 가능한 단순하면서도 엄격한 규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규칙을 세우셨나요?



멍때리기 대회 우승자를 가리는 방법은 예술점수와 기술 점수로 판단합니다. 예술점수는 시민들이 가장 멍때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선수에게 현장에서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기술점수는 15분 간격으로 심박수를 재는 것인데요, 예술점수가 가장 높은 10명 중 심박 그래프(기술 점수)가 점차 낮아지는 선수를 우승자로 선발합니다.

 

선수들은 대회 중에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배포한 컬러카드로만 주최측과 소통 할 수 있습니다. 빨간색 카드는 마사지 서비스, 파란색 카드는 물 서비스, 노란색 카드는 부채질 서비스, 검정색 카드는 기권 또는 화장실 사용 등등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대회 규칙을 알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처음 대회를 만들기 시작할 때에는 ‘멍때린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활동으로 경쟁한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고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로 현재의 규칙들이 만들어졌습니다.


Q.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거듭할수록 화제를 끌고 있습니다.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감회와 함께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멍때리기 대회가 진행되고 널리 알려지면서 가장 놀라운 일은, 사람들은 더 이상 ‘멍 때리는 일’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가족 단위로 자녀와 함께 이 대회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어릴 때 멍을 때리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곤 했으니까요. 대회의 취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계시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멍때리기 대회에 참여하는 것이 버킷리스트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니 저로서도 신기할 뿐입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해외에서도 대회를 치러왔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를 망라하고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불안은 동시대적인 문제라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더 많은 해외 대회를 개최할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멍때리기의 날’을 만들어서 전 세계인이 한날한시에 단 몇 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렇게 되면 말 그대로 ‘지구가 멈춘 날’이 될 테니까요.


Q. 마지막으로 웁쓰양 님에게 진정한 휴식이란 무엇인가요?



사람들에 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웁쓰양님은 멍때리기 고수시죠? 멍때리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은 잠을 잘 자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잠을 잘 자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죠.”

 

저는 전형적으로 바쁘게 살아야 안심이 되고, 조금이라도 쉬거나 여유가 생기면 다른 일을 찾아서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 번아웃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대회를 주최하면서 종종 멍 때리는 선수들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휴식’이라고 하면 시간을 내야하고 어딘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면 돈을 벌 듯이, 바쁘게 일하면 시간도 벌게 되잖아요. 하지만 벌어놓은 시간엔 늘 다른 새로운 일들이 채워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벌어 놓은 돈으로 소비를 합니다. 예를 들면, 평소 봐 둔 비싼 옷을 사거나 좀 더 가볍게는 밥값과 비슷한 커피를 마시는 정도의 사치 말이죠. ‘휴식’은 대단한 결행이라기 보다는 차 한 잔 마시는 정도의 사치만 부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휴식이 부담스럽고, 불안하다고 느낀다면 커피 한 잔 값 정도의 시간의 사치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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