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소외 계층을 하나하나 호명해가듯 ‘비닐하우스’는 문정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문정은 비닐하우스 안에 살고 있다. 그녀는 아들이 소년원에서 나올 날만을 기다리며 노부부 돌보는 일을 한다. 그 중, 치매에 걸린 아내 화옥은 문정과 남편 태강과의 관계를 의심하며 문정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기 일쑤다. 이런 상황도 벅찬데 지적 장애를 가진 그녀의 친엄마도 병원에 입원중이다. 문정은 이처럼 끔찍한 상황을 잊기 위해 가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쓴다. 아들이 소년원을 나오면 함께 비닐하우스를 벗어나는 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꿈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그녀는 아직 맛보지도 못한 그 행복을 뺏길 위기에 처한다. 간병인 문정에게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문정이 가난, 노동, 정신적 고통과 싸우고 있다면, 그녀가 돌보는 화옥과 태강은 고령, 고독, 육체적 병과 싸우고 있다. 돈은 부족하지 않지만, 이들은 타국에서 생활하느라 부모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자녀들로부터 소외당해 있다. 점잖고, 배려심 많고, 원래 밝은 사람이었던 태강은 이미 오래 전에 눈이 먼데다 치매 초기 진단까지 받자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다. 그는 오히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이 싫어 남은 생을 포기하려 한다. 그 와중에도 문정에게 집 구할 돈까지 남기는 따뜻함을 보인다. 이런 태강에게는 늙고 병들었어도 끝까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고, 존중받으며 살게 해줄 환경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