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이슈]
쇠락한 도시에서 문화예술의 도시로 스페인 빌바오의 기적
스페인 빌바오(Bilbao)는 철강‧조선이 흥했던 도시로 황폐화하였다가 현재 문화예술의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드라마틱한 도시 재생의 출발점에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이 자리해 있다. 미술관이 도시재생에 미친 영향력이 워낙 독보적이다 보니,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도시재생의 교과서라 불리는 빌바오 시는 어떤 스토리를 품고 있을지 살펴보자.
발상 전환으로 이뤄낸 문화예술 도시
스페인 동북부 바스크(Basque) 주의 빌바오 시는 1970년대까지 조선‧철강‧금융 산업이 매우 활발했던 지역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했던 지역이자, 바스크 주의 경제 중심지였다.
그랬던 이 도시에 1970년대 후반 위기가 찾아왔다.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심각한 산업 위기를 맞이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회사가 문을 닫아야 했다. 대형 제철소와 수많은 조선소도 예외일 순 없었다. 실업률은 무려 35%에 육박했고, 극심한 경제 침체는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이에 환경 파괴 문제까지 발생하면서 타격은 더해졌다. 산업폐기물로 인해 수질과 토양이 급격히 오염됐고, 설상가상으로 1983년 대홍수까지 발생했다. 도시 쇠퇴는 날이 갈수록 가속화되었다.
결국, 빌바오 시는 산업 쇠퇴와 도시 침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재생에 돌입한다. 기존의 철강, 조선 같은 2차 산업이 아닌, 문화예술 산업을 통해 도시발전 및 경제 부흥을 이루겠다는 과감한 발상 전환을 한 것이다.
미술관 건립을 통해 이뤄낸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첫 단계는 미국 구겐하임 재단과 손잡고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1991년 바스크 주는 미술관 유치를 계획했다. 하지만 개관되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부분의 주민이 이 생소한 사업을 이해하지 못했고, 모든 정치 세력도 이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바오 시는 주민들과 끝없는 소통을 통해 합의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결국 1997년 10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개관됐고, 미술관은 오픈하자마자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둔다. 개관 1년 만에 13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다녀갔으며, 이후 5년 만에 미술관 건립에 들어간 수익을 거둬들였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폐허로 변해가던 빌바오 시를 세계적인 문화 관광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일자리 창출 등 놀라운 경제적 효과를 이뤘고, 이는 지금까지도 도시재생의 교과서로 일컬어지고 있다.
종합적 도시 인프라 구축으로 도시재생 성공
그렇다면, 단지 미술관 유치 하나만으로 도시재생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빌바오 시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이 하나의 랜드마크로서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미술관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공항 터미널, 트램, 고속 운송 시스템, 문화레저센터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지속적으로 재투자한 것이다.
또한, 민‧관 협력 기구인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을 설립해 전통적인 지역축제를 활성화했다. '메트로폴리 30'의 '30'은 주변 도시 30곳을 뜻하는 것으로, 주변 지역과 상생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더불어 심각하게 오염된 네르비온 강을 정비하여 녹지공간을 조성했고, 이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조형미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미술관이 자리한 아반도이바라 지역의 주거지 정비를 통해, 종합적인 도시 재생 계획을 실천함으로써 전반적인 지역 활성화도 이뤄냈다.
즉 랜드마크로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과 주변 지역이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포괄적인 계획을 실천했다. 이는 문화 주도형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게 만들었다.
산업 환경의 급변으로 죽어가던 도시 빌바오가 이제는 연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세계적인 문화관광 도시로 탈바꿈했다. 그 안에 조성된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는 지금도 빌바오를 지속가능한 도시로 성장, 발전하게 만들고 있다. 빌바오 시의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도시재생을 위해 꾸준히 계획, 실천해 온 정부의 노력과 더불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준 민간기구, 시민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