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증가와 과학 기술의 혁신은 찬란한 문명의 발전을 일으켰지만, 한편 그 이면에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 문제가 따라왔다. 이러한 고통을 받는 지구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 속에서 채식을 실천하고, 식물성 제품을 소비하며 지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지구인으로서 지구에게 감사하고자 하는 사람들, 비건(vegan)과 비건을 지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2024 코리아비건페어’에서 들어보았다.


2024 코리아비건페어 입구


비건은 식물성 식품만을 섭취하는 식생활 문화이자, 더 넓은 범위에서는 동물의 가죽 등을 이용한 의류를 입지 않고, 동물실험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는 등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비건은 소수의 문화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가치 있는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9년을 시작으로 매년 개최된 ‘코리아비건페어’는 전년 대비 사전등록 및 티켓 예매율이 약 3배 이상 증가하며, 비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코리아비건페어에는 국내 대형 유통 바이어를 비롯하여 인도, 러시아, 요르단, 태국 등 해외 바이어도 참여하며, 다양한 기업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선보인 비건 제품을 한 눈에 만날 수 있었다.



지구에게 감사하며 먹기, 비건 식품

항상, 또는 종종 비건 식단을 먹는 이들이 있다. 건강이나 체질 문제일 수도, 종교적 이유일 수도, 개인의 신념을 지키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비건 식단이 기후위기와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2024 코리아비건페어에서도 다양한 비건 식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식물성 대안식 ‘런천 김치 덮밥’


행사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파란 트럭을 마주할 수 있다. 이 부스에서 관람객들에게 하나씩 쥐어준 ‘런천 김치 덮밥’은 사실 100% 식물성 원료를 사용해 만든 비건 식품이다. 육류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풍미와 질감이 일반식품과 차이를 보이지 않아, 비건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행사장에는 대체육 제품 외에도 비건 제과제빵, 비건 페이스트, 심지어는 짜장면과 만두와 같은 즉석식품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제품 덕분에 비건을 실천한다 해서 나의 일상이 불편해 질 거라는 걱정을 없앨 수 있었다.


 비건 주류


가장 인상 깊었던 비건 식품은 비건 와인이다. 일반적으로 와인을 제조하는 과정에서는 동물의 젤라틴, 달걀흰자, 생선 부레 등 동물성 재료가 사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비건 와인은 동물성 재료 대신 벤토나이트(점토), 식물성 카제인, 숯, 종이 필터 등 식물성 재료로 대체하여 만들어졌다. 그만큼 와인 제조과정이 복잡하고 느리지만, 묵묵하게 지구와 동물이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노력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함께 마시자 와인의 향과 맛이 좀 더 오래 입안에 머물렀다.



자연이 준 선물을 자연에게로 돌려주다, 가드닝

최근 ‘식집사(식물을 키우는 사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드닝의 인기는 2024 코리아비건페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식물을 키우는 이들이라면 주목할 만한 다양한 제품이 있는 것은 물론, 행사 내 ‘가드닝 특별 기획전’이 열리기도 했다.


업사이클링 화분


식물을 돌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도 하고, 애정을 갖고 열매와 채소를 직접 길러내어 먹기도 한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선물을 주는 존재였다. ‘자연이 준 선물에 이자를 붙여 자연에게 돌려줍니다’라는 비건 철학답게 술지개미, 깻묵, 감귤껍질, 쌀가루 등 식물의 부산물이 새 생명이 자라나는 화분으로 재탄생한 ‘업사이클링 화분’을 볼 수 있었다. 업사이클링 화분의 독특한 점은 화분 속 어딘가에도 씨앗이 숨겨져 있어, 분갈이 후 쓸모없어진 화분을 땅에 심으면 또 다른 생명이 자라난다는 것이다. 올해는 집안에 화사함을 선물해줄 식물을 하나 들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뜨개화분


가드닝 특별 기획전에서는 뜨개질과 화분을 접목한 다양한 ‘뜨개화분’을 볼 수 있었다. 최근 SNS에서 뜨개질이 유행하였고, 1인가구의 증가로 작은 집에서도 키울 수 있는 크기의 화분의 수요가 높아진 만큼 뜨개화분 앞에 발길이 머무른 이들이 많았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비건 실천

 

강아지와 인간 모두 취식이 가능한 간식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비건을 시작한 경우도 있다. 반려동물을 단순한 동물이 아닌, 가족의 구성원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남에 따라 동물 또한 사람이 먹을 수 있을만큼 안전한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는 ‘휴먼그레이드(Humangrade)’가 조명되었다. 2024 코리아비건페어에서 휴먼그레이드 간식을 판매하는 부스를 볼 수 있었다. 사장님은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자신과 똑같은 행복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 만들었다고 한다. 부스 앞에 놓인 사진 속 하얀 강아지의 까만 눈망울이 이러한 사랑에 대변하듯 한없이 맑고 애정이 어려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꾸미고 같이 운영한 비건 간식 부스


아이들과 같이 운영하던 비건 간식 부스도 볼 수 있었다.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만든 간판과 메뉴판에는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랑과 애정이 느껴진다. 함께 꾸려나가는 가게여서 그럴까, 음식을 제조하고 배달하는 과정이 길다고 명시된 안내사항에는 그만큼 공을 들여 만들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끔 한다.


2024 코리아비건페어에 참여한 다양한 부스의 수만큼, 비건 철학 역시 다양했다. 비건을 실천하는 것은 환경을 보호하는 마음과, 더 나아가 지구상 모든 존재들에 대한 애정을 뜻한다. 지금 두 발로 딛고 서있는 이 곳, 지구는 내가 머무는 집이자 동시에 나의 동거인이다. 내 몸 하나 편안하게 누일 수 있는 보금자리이자 앞으로의 일상을 함께 보낼 동거인으로서 잊고 있던 고마움을 하나씩 천천히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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