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우리 사회에서 ‘고립·은둔 청년’, ‘은둔형 외톨이’와 같은 단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2022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국무조정실)’ 및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중 고립·은둔 징후가 나타난 이들은 최대 약 54만 명 규모까지 추정(한국보건사회연구원)된다고 한다. 여기서 고립 청년이란 물리적, 정서적으로 타인과 관계망이 단절됐거나 외로움 등의 이유로 일정 기간 고립상태인 것을 말한다. 은둔 청년이란 집 안에서만 지내며 일정 기간 사회와 교류를 차단하고, 최근 한 달 내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청년을 말한다.
이들은 탈 고립·은둔 의지가 있음에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이 현재 상태를 벗어나길 원하며, 67%는 실제 탈 고립·은둔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고립·은둔 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탈 고립·은둔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땅굴’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씨즈 이은애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사단법인 씨즈의 ‘두더지땅굴’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두더지땅굴은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입니다. 2023년 말 보건복지부에서 고립·은둔 기간 중 청년들의 일상생활을 조사한 결과, 52%가 유투브 시청, 포털 검색 등 온라인 활동 중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희 씨즈도 2021년 말에 고립·은둔 청년들을 기획단으로 모아서 ‘세상에 어떤 서비스가 나오면 은둔 극복에 도움이 되겠냐?’고 물었는데요. 이 때 많은 분들께서 ‘온라인 활동으로 고립·은둔 청년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사이트가 필요하다’고 응답하기에 두더지땅굴을 오픈하게 된 것입니다.
두더지땅굴이라는 명칭도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공모하여 스스로 선택하게 한 것입니다. 두더지처럼 깊고 어두운 땅 속에 웅크리고 있지만, 이들이 연결되어 서로를 위로하며 교류할 수 있는 두더지들의 연결망, 땅굴이라는 의미입니다.
Q. 최근 고립·은둔 청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와 거리를 두는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요?

서울시나 보건복지부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원인 1순위로 경제활동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꼽혔습니다. 청년 일자리 감소, 고용불안, 경력직 중심의 채용 등 높은 문턱으로 인해 취업에 실패하거나, 양질의 일자리 취업이 어려운 것이죠. 정규직 전환이 어려운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어렵게 취업해도 일머리가 없다며 지적 당하다보니 퇴사와 함께 웅크려 들게 됩니다. 또한 실직상태가 지속되면서 지인을 만나기도 민망하고, ‘나만 뒤쳐진 인생이구나’라고 느끼며 회피하고, 비용부담도 커져 결국 친구는 물론 가족들과도 관계를 끊고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10년 이상 장기 은둔한 청년 중에는 학창시절 학교폭력 피해자인 경우도 많습니다. 따돌림, 학교폭력으로 인해 사회성이 부족해지고, 친구를 사귀어 본 경험도 없고, 나아가 사람이 무섭다고 느껴 모든 인간관계가 중단된 사례도 많습니다.
이외에도 학교나 부모님의 양육과정에서 지나친 통제나 방임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경계성지능·ADHD·고도 우울증·사회공포증 등 정신적 문제가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고립·은둔의 원인은 다양하고, 개인차를 보이지만 주된 원인은 소수의 주류적 성공방식만을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엘리트능력주의가 사회구조적 배경이라 생각합니다.
Q.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직접 만난 탈 고립·은둔 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 경기, 광주 등을 제외하면 지자체 차원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정책이 부재한 상황입니다. 이에 충남 아산에 거주하는 은둔 청년이 서울에 고시원을 얻어, 저희 씨즈가 운영하는 고립·은둔 청년 자조모임터 ‘두더집’에 2달째 오고 계시기도 해요. 이 청년 분은 5년가량 은둔 생활을 하셨는데요. 이전에는 사람들과 눈맞춤조차 힘들었지만, 지금은 두더집에서 새로 온 청년을 환대하고 두더지땅굴에 여러 동아리 소식 등을 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를 신청하고, 대학 입학을 준비하신다고 합니다.

지난해 서울시 후원으로 진행한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획득하며 씨즈의 일경험 지원사업에 참여했던 청년이 계십니다. 지금 스타벅스 매장 직원이 되었어요. 사람들과의 교류를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서비스 업종인 카페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진, 보편적인 청년의 모습을 보였던 분이죠.

조현병과 피해망상 진단을 받고도 치료를 거부하며 식사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은둔 청년도 계셨습니다. 어려서부터 가정 내 학대와 빈곤문제로 힘들게 생활하였는데, 두더집에 오면서 집밥 모임을 통해 건강한 식사로 영양문제도 해결하고 치료도 병행하는 변화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청년들이 각자 처한 위치에서 변화계획을 세우고 사회로 이행하는 속도를 붙여 나가는 자립이행 사례를 많이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Q. 고립·은둔 생활이 길어지면서 생활 루틴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고립·은둔의 해결을 무조건 취·창업이라고만 바라보지 않으니 참 고맙습니다. 고립·은둔이 길어지면 불면증 또는 과면증을 보이면서 낮밤이 바뀌는 양상을 보입니다. 식사도 챙기지 못하거나 정크 푸드 중심의 배달음식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경우에는 결식도 발생합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다보니 씻거나 옷을 갈아입거나 세탁, 청소 등 일상생활의 기본 리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일상생활 기술의 회복은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고립·은둔 청년이 교류하는 개방적인 공간 두더집을 열고, 집밥 모임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공동체 텃밭에서 식자재를 재배하고, 직접 조리하며 함께 식사 후에 설거지와 청소 등을 스스로 협동해 처리하는 경험이 일상생활기술 훈련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정리정돈 전문가와 함께 자원자 거주공간을 청소하거나, 이를 동영상으로 찍어 청소방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상성의 회복이 되어야 이후 산책, 주기적 운동 등 우울증을 감소시킬 신체건강 활동도 제안이 가능해집니다.
Q. 일본 등 해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며, 다양한 지원을 실시했는데요.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의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지원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국과 일본, 홍콩 등 해외의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경제가 저성장기로 전환할 때, 고도성장기에 성공신화를 가진 베이비부머 부모세대의 자녀들이 고립·은둔 청년으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조기 발굴·지원할수록 예후가 좋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과 일본의 고립·은둔 상황은 다르고, 해법도 차이점이 있습니다.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인 ‘히키코모리’ 전문가들이 한국의 사례를 보며 의아해 하는 것이 크게 두 가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서울의 고립·은둔 청년 중 30% 이상이 1인가구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히키코모리 대부분이 중산층 부모님 집안에서 장기 은둔하여 8050 문제로 발전했습니다. 두 번째는 고립·은둔 청년 본인이 상담을 신청한다는 것입니다. 씨즈로 고립·은둔 상담을 신청한 1,500명 이상 중 70%가 청년 당사자였지만, 일본에선 87%가 부모님이 상담하며, 자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다고 합니다.
한국은 서울로, 수도권으로 청년 인구가 집중되어 있고, 1인가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양극화도 커지다보니, 중하층 이하 1인가구 고립·은둔 청년들은 생존을 위해 인근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거나, 쿠팡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몇 달치 생계비를 벌어 재고립하는 특이한 양상을 보입니다. 이에 고립·은둔 청년들이 자립생활을 도전하도록 돕는 가상회사, 일경험 등 자립지원 정책이 절실합니다.
또한 씨즈가 운영하는 두더지땅굴 온라인 플랫폼이 고립·은둔 상태의 청년들을 세상과 연결시키며, 스스로 은둔탈출을 위한 상담신청 등을 가능하게 하기에 이러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민간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고립·은둔 청년 발굴과 조기연결이 지속되도록 정책적 관심도 높여가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고립·은둔 청년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방치할 수는 없다. 이를 방치하면 더 큰 사회문제,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서울시는 2020년부터 고립‧은둔 청년 지원을 실시하고 있으며, 2024년 6월~7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을 펼친다. 고립·은둔 청년이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