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 이야기


물 위에 쓴 투명한 질서

암스테르담의 운하 주택


글. 배윤경 건축칼럼니스트

“네덜란드는 물이 빠져나가야 비로소 사람이 살 수 있는 나라지만,마음은 여전히 물속으로 가라앉는 곳이다.” 

_ 아드리안 반 디스

작가 아드리안 반 디스(Adriaan Van Dis)는 해수면보다 낮은 땅을 개간해 정교한 낙원을 구축해 온 네덜란드인의 영광과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는 정서적 공허함을 문장에 담았다. 네덜란드 국토의 20%는 원래 바다나 호수였다. 제방을 둘러치고 안쪽을 호수처럼 만든 다음 풍차 날개를 돌리는 강한 서풍의 도움으로 꾸준히 물을 퍼내면 비로소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갓 태어난 땅은 염분과 수분이 많아서 갈대 등 식생을 심고 한참을 빗물로 씻어 내는 과정 거쳐야 한다. 간척지 폴더(polder)는 다시 연약한 늪지대 지반을 견디기 위해 무수히 많은 나무 말뚝을 지하 암반 깊이까지 박았다. 암스테르담의 왕궁 하나만 해도 13,659개의 말뚝으로 지지했다. 위태로운 땅 위에 밭과 마을, 도시가 차례로 올라섰다. “신은 세상을 만들었지만, 네덜란드인은 네덜란드를 만들었다”라는 말처럼 네덜란드의 역사는 곧 물과의 전쟁이자 공존의 역사였다.

  l 도시의 골격이 된 세 개의 운화와 실용적 기하학

암스테르담은 이런 나라의 수도답게 처음부터 물과 도시가 한데 엮여 자라난 도시다. 지도를 펼쳐 보면 헤렌그라흐트, 카이저르그라흐트, 프린센그라흐트라는 세 개의 운하가 중세 도심을 둘러싼 채 나이테 처럼 반원을 그리며 이어진다. 그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기하학이다. 얼핏 보면 도시가 자연스럽게 성장한 흔적 같지만, 실제로는 17세기 초에 세운 계획의 산물에 가깝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습지대를 운하로 잘게 나누어 물을 빼고, 그 사이사이 간격에 흙을 채워 부지를 만든 다음, 맨 바깥쪽에는 방어와 경계를 겸하는 물길을 한 겹 더 두르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다. 물 관리, 교통, 상업, 방어를 한 번에 해결하려 한 실용적인 발상이 도시의 골격이 되었다. 운하가 그리는 긴 선을 따라 폭이 좁고 키가 큰 집들이 연필처럼 세워져 있다. 운하 조망권과 접근성을 공공의 자산으로 보고 건물 폭에 따라 세금을 매기던 시기, 상인들은 거리에 면한 너비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 뒤로는 골목까지 길게 집을 밀어 넣었다. 여기에 습한 땅이라는 조건이 겹쳤다. 필지를 넓게 한 번에 눌러 앉히기보다는 가늘고 긴 조각으로 나누는 편이 기초를 유지하는 데 유리했다. 그 결과로 생겨난 8x25미터의 표준화된 비례가 오늘날의 주택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폭이 좁고 땅이 귀한 탓에 실내 계단은 놀라울 정도로 가파르다. 네덜란드에 산은 없지만, 집집마다 절벽이 숨어있달까. 무거운 짐을 이고 오를 수 없을 정도로 좁고 험악해서 창문으로 반입하기 위한 도르래가 필수적이다.

  l 커다란 창문에 담긴 상업적 신용과 칼뱅주의 윤리

운하 주택에서 폭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오히려 창의 크기 일지도 모른다. 1층은 물론이고 위층까지 유리 면적이 과하다 싶을 만큼 크게 뚫려 있는 집이 많다. 물론, 이 지역 특유의 잦은 흐린 날씨를 생각하면, 채광은 단순한 취향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달려 있다. 폭이 좁고 깊숙한 집에서는 특히 그렇다. 자연광을 집 안까지 끌어들이려면 창을 크게 내는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 집들이 오랫동안 상점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창 너머로 상품이 보이고, 손님을 맞을 수 있을 만큼 정돈된 내부가 보이는 것은 곧 주인의 신용을 보여주는 장치였다. 언제 들여다보아도 크게 어수선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집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 그런 이미지는 상업 도시에서 꽤 중요한 자산이었다. 여기에 네덜란드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개신교, 특히 엄격한 금욕주의와 정직을 강조했던 칼뱅주의(Calvinism) 문화가 겹친다. 화려한 장식이나 과시보다는 검소함과 성실함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숨기려 하지 않는 살림살이는 미학을 넘어서 일종의 윤리적 태도로 읽힌다. 커튼을 반쯤 열어두고, 거실을 밖에서 적당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나는 떳떳하다’는 선언에 가깝다. 칼뱅주의자 들에게 집은 은밀한 사생활의 공간이기보다 자신의 도덕성을 입증 하는 투명한 무대였다.

  l 안네의 은신처와 페르메이르 : 투명한 일상 속에 숨은 이면

이런 개방성이 언제나 따뜻한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고스란히 내보인 가정은 이웃이 서로를 지켜보는 촘촘한 상호 감시의 문화를 형성했다.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를 떠올려 보면, 길쭉한 집 구조가 가진 이중적인 얼굴이 좀 더 분명해진다. 소위 ‘안네 하우스’라고 불리는 건물 구조는 앞쪽에는 사무실이 있고, 뒤쪽에는 거주 공간이 숨겨진 ‘아흐터하위스(Achterhuis, 뒤쪽 집)’ 형태였다. 밖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이 공간은 좁고 긴 필지 구조가 만들어낸 우연한 도피처였다. 책장으로 숨겨진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안네의 골방은 오래도록 주변 이웃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일상이 은근히 공유되고, 규범에서 벗어난 흔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비밀이 끝까지 지켜지기는 어려웠다. 닫혀 있는 창문과 인기척 없는 공간이 품었을 이질감은 이웃의 의심과 고발로 이어졌다. 구조적으로는 숨어들 틈을 제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덫이 된다. 커다란 창과 드러난 거실,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지는 깊은 내부 공간은 이 도시가 어떻게 서로를 보듬고 또 감시해 왔는지를 동시에 말해 준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가운데 섬세하게 포착한 조용한 일상은 잘 알려진 회화에서도 나타난다. 네덜란드 미술은 일상의 모든 상황을 가능한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창가에 걸린 지도, 탁자 위에 놓인 편지, 바닥 한쪽에 기대 둔 빗자루 같은 것들이 캔버스를 채웠다. 미술사학자 스베틀라나 알퍼스(Svetlana Alpers)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그림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리얼리스트적 전통을 ‘묘사적 양식(pictorial mode)’으로 정의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캔버스 평면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을 향한 ‘창문으로서의 회화’였다면, 네덜란드 미술은 거창한 신화나 종교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이라기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지도 혹은 거울로서의 회화’였다. 이런 그림은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는 방식이다. 네덜란드인들에게 세상은 신학적 서사의 무대가 아니라 정교하게 측정되어야 할 표면 이었다. 암스테르담의 거대한 창문은 세상을 관찰하는 렌즈였고, 내밀한 거실을 전시하는 문화는 집을 하나의 정물화처럼 묘사하는 행위였다. 이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거주를 위한 공간을 넘어 도시라는 거대한 지도 위의 한 점으로 정확히 재현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이는 지도를 제작하고 지형을 측정하는 기술이 곧 국력이었던 해양 강국 네덜란드의 정체성과도 일맥상통한다.

현실은 모두 우리의 시선 안에 있으며, 숨겨진 메시지는 없다. 폴더를 나눈 직사각형 격자, 운하의 동심원, 운하 주택들의 얇은 정면이 하나의 커다란 화면처럼 펼쳐지고, 우리는 그 위에 찍힌 자잘한 흔적들을 눈으로 쫒는다. 그러다보면 굴곡진 일 없는 듯 끝없이 평평한 초원과 단정한 마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도사린 위협과 펌프로 끊임없이 물을 빼내야하는 숨가쁜 운명까지도 풍경의 일부로 이해하게된다.

배윤경 건축 칼럼니스트는 대학에서 건축설계와 이론을 강의하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고 있다.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어린이를 위한 유쾌한 세계 건축 여행>을 썼다. 공저로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건설 과정을 기록한 < New Beauty Space: Amorepacific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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