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 이야기


원근법이 빚은 인간의 도시

이탈리아 비첸차


글. 배윤경 건축칼럼니스트

“오, 이 원근법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_ 파올로 우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원근법 연구에 몰두한 화가에게 그만 잠 좀 자라고 아내가 권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올로 우첼로에게 원근법은 어째서 그렇게나 매력적이었을까?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비첸차는 르네상스 건축의 거장 팔라디오가 설계한 ‘원근법의 정수’를 간직한 곳이다. 무대 위의 착시가 만드는 가상의 골목부터 사방의 풍경을 끌어안는 빌라까지, 비첸차의 건축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시선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l 원근법이 소환한 가상의 깊이, 올림피코 극장

비첸차는 베네치아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도심 한복판에는 르네상스의 거장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설계한 바실리카와 로지아, 귀족 궁전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처럼 압도적인 팔라디오의 건축물 덕분에 비첸차는 건축 애호가들이 베네치아 일정에서 기꺼이 하루를 떼어 들르는 도시가 되었다. 한 사람의 이름이 한 도시의 이름과 나란히 거론된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거대한 그림자를 남겼는지 보여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할 곳이 올림피코 극장(Teatro Olimpico)이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근대적인 실내 극장들보다 훨씬 먼저 지어진 이 극장은 팔라디오의 유작이자,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인 빈첸초 스카모치가 완성한 무대 세트로 유명하다. 실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타원형 관람석과 그 맞은편에 놓인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어떤 장소를 통째로 옮겨온 듯한 석조 도시의 배경에는 아치형 문들이 솟아 있고, 그 틈 사이로 조그마한 거리와 건물이 이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석 정면, 오직 딱 한 자리에 앉았을 때만 이 골목이 끝없이 이어진 진짜 거리처럼 보인다. 건축가가 설정한 위치에서 조금만 옆으로 비켜 앉아도 착시의 마법은 금세 풀린다. 기울어진 벽, 비정상적으로 좁은 길, 갑작스레 작아지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멀리 있어서 작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게 제작됐다. 관객석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천장도, 바닥도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손바닥만 한 건물들이 서 있는 모형 도시로 변한다. 이 흥미로운 장면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르네상스가 낳은 또 하나의 발명품, 원근법이다.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가 정리한 원근법은 화면 위의 모든 선이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모이도록 만드는 규칙이었다. 그 소실점은 더 이상 신의 시선이 아니라 화가가 서 있는 눈높이의 연장선에 놓인다. 올림피코 극장은 그 2차원 규칙에 입체감을 더해 무대 세트에 옮겨 놓은 결과다. 다섯 개의 골목은 건물 내에서 만들 수 있는 한계를 넘어, 가상의 깊이를 소환했다.

  l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원근법이 등장하기 전의 세계는 상징의 위계에 따라 배열됐다. 더 중요한 인물은 더 크게, 더 거룩한 존재는 더 높이 그려졌다. 일점투시는 이 위계를 뒤집는다. 모든 것은 관찰자의 자리에서 멀어질수록 작아지고, 가까울수록 커진다. 위치가 곧 크기와 의미를 바꾸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변화는 단지 그림을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었다. 세계는 하나의 시점에서 정확히 측정될 수 있으며, 그 시점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자각이었다. 세계는 더 이상 추상적인 신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장면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재구성 되는 장면이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연과 도시를 대하는 태도도 바꾸어 놓았다. 인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관찰자로서, 동시에 그 관찰을 통해 법칙을 찾아내는 연구자로 등장한다. 길이와 각도, 빛의 방향을 치밀하게 계산해 하나의 소실점에 수렴시키는 그림에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장면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재현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얻게 된다. 우첼로가 밤새워 붙들고 있던 것은 그런 세계관 자체였을지 모른다. 꼼꼼히 들여다보면 세상을 조립한 신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흥분 말이다.

  l 사방의 풍경을 지배하는 선언, 빌라 로톤다

이제 그 한 사람의 시점을 수용할 한 채의 집을 떠올려 보자. 비첸차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을 꼽으라면 대부분 빌라 로톤다(La Rotonda)를 말할 것이다. 비첸차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네 개의 똑같은 얼굴을 가진 이상한 주택이 하나 서 있다. 건축가라면 생전에 한 번쯤 순례해야 할 의무처럼 여겨지는 데 비해, 기념비가 풍기는 직관적인 위엄은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낮은 계단을 오르면 아테네의 신전처럼 포르티코가 맞이하고, 그 위로는 로마 판테온을 닮은 돔이 올라가 있다. 네 면이 모두 같은 구성을 하고 있어서 어느 쪽에서 접근하든 항상 정면에 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집은 본래 로마에서 활동하던 교황청의 외교관이었던 파올로 알메리코가 고향 근처 언덕 위에 세운 교외 별장이었다. 주변에는 밭과 포도밭과 같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빌라 로톤다는 생산 거점이라는 실용적 목적보다는 경치를 둘러싼 휴식과 사교, 자기 과시를 위한 장소에 가까웠다. 그런데 팔라디오는 개인의 거처를 위한 이 사적인 공간에 우주의 중심을 연상시키는 평면을 가져왔다. 정사각형 바탕에 내접한 원형 홀과 사방 어디에서나 동일한 위계로 연결되는 계단과 포르티코로 이루어진 평면이었다. 사방으로 열린 현관은 각각 주변의 언덕과 초원, 그리고 멀리 비첸차 구시가지까지 서로 다른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인다. 언덕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언제나 한 면의 신전형 정면이 드러나는 배치 덕분에, 이 집은 풍경을 감상하는 관람 장치인 동시에 스스로 시골 풍경 속에 떠 있는 하얀 무대가 된다. 이는 곧 ‘나는 세계의 어느 방향에서도 중심이 될 수 있다’라는 르네상스식 자신감을 적어 내려간 하나의 선언문이다.

  l 스마트폰 화면에도 소실점이 위치하는가

2009년, 영화감독 던칸 존스는 영화 <Moon>에서 올림피코 극장의 원리를 영화 세트로 옮겼다. 달 기지의 복도를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나무로 제작한 세트는 사실 그리 길지 않지만, 카메라를 복도 축의 한가운데에 두면 화면 속에서는 끝없는 통로처럼 보인다. CG로 쉽게 구현할 수 있는 장면을 애써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을 능가하는 가상 현실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는 왜 굳이 이 구식 원근법의 장난을 고집했을까. 일점투시도를 발명하던 시대의 사람과 스마트폰으로 달 뒷면을 보는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현대인의 삶을 붙들어 맨 작은 화면은 각자의 손, 각자의 시간에 따라 무수한 시점을 허락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타임라인을 중심으로 세계를 재배열하고, 각자의 작은 프레임 안에서 우주를 스크롤한다. 빌라 로톤다의 천장을 올려다보는 성직자의 경건함과, 어두운올림피코 극장에서 좁은 골목의 착시에 빠져드는 관객의 호기심 사이에는 묘한 연관이 있다. 모두가 하나의 소실점을향 해 몸을 고정하고 시선을 맞추며,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를 이해하고 재배열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는 점에서 그렇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쏟아지는 수많은 장면 속에서, 우첼로가 밤새워 탐구하던 원근법의 진짜 매력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먼저 속도를 늦추지 않는 한, 그 사랑스러운 깊이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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