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크릿 서울
골목 끝에서 만난 온기
서촌에서 만나는 봄과 문학 산책
글. 편집실 사진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골목마다 오랜 시간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서촌의 봄은 유독 다정한 온기로 가득하다.
전통의 지혜를 간직한 ‘상촌재’에서 시작해, 예술가의 고결한 생애가 깃든 ‘박노수미술관’의 정원으로
이어지는 산책은 우리 내면의 감수성을 다시 깨워주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l 고택의 문틈에서 발견한 봄, 상촌재
경복궁의 서쪽 마을, 서촌은 낮은 한옥과 좁은 골목길이 자아내는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로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의 굽이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에서 단아한 자태를 뽐내며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바로 전통문화공간 ‘상촌재(上村齋)’이다. 상촌재는 19세기 말 전통 한옥 방식을 그대로 복원 하여 2017년 문을 열었다. ‘상촌(上村)’이라는 이름은 경복궁 서쪽 지역인 세종마을의 옛 명칭에서 따온 것으로, 윗대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오랜 세월 방치되었던 한옥 폐가를 정성스럽게 되살린 이곳은 단순히 관람하는 박물관을 넘어,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상촌재의 가장 큰 매력은 한옥의 정수인 온돌과 전통 주거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상촌재는 안채, 사랑채,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온돌의 원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에게는 교육적인 장소이고, 성인들에게는 잊고 지낸 전통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공간이다.
한편, 상촌재는 계절마다 고유한 정취를 오롯이 담아낸다. 봄에는 따스한 햇살이 툇마루를 적시고, 여름에는 시원한 대청마루에서 바람의 길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세시풍속에 맞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 공예 만들기, 한복 체험, 다도 클래스 등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봄바람이 살랑이는 요즈음 화려한 핫플레이스들에 지쳤을 때, 상촌재의 툇마루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아보자. 고요함 속에 서촌의 역사가 속삭이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이렇듯, 서촌의 좁은 골목을 탐험하다 만나게 되는 상촌재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화려함 이면에 숨어있는 단단하고 따뜻한 공간이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통’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유물이 아니라 우리 곁을 지키는 든든한 휴식처임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이번 주말,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상촌재에서 봄의 온기를 오롯이 느껴보는 건 어떨까.
상촌재
위치|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2-11
운영시간|화~일요일 09:00~18:00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관람료|무료(체험프로그램은 사전 예약 및 유료 운영)
문의|02-6013-1033
l 서촌의 끝자락에서 만난 비밀 정원, 박노수미술관
서촌의 고즈넉한 골목길을 따라 인왕산 발치까지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양옥 한 채가 발길을 붙잡는다. 이곳은 한국 화단의 거목이었던 남정(藍丁) 박노수 화백이 40년 가까이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던 집을 시립미술관으로 개관한 ‘종로 구립 박노수미술관’이다. 박노수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지닌 역사적 가치만으로도 방문할 이유가 충분하다. 1937년경 지어진 이 가옥은 한국인 건축가 1세대인 박길룡이 설계한 것으로, 당시의 한식 구조와 서양식, 중국식 건축 수법이 절묘하게 혼합된 독특한 양식을 띠고 있다.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과 나무 계단, 다락방 같은 서구적 요소와 함께 한옥의 기와 지붕이 어우러진 이 집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신발을 벗고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를 따라 미술관 내부로 들어섰다. 박노수 화백 특유의 맑고 절제된 색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강렬하면서도 맑은 청색(Blue)의 사용과 과감한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그의 그림들은, 작가가 평생을 추구해 온 고고한 선비 정신과 현대적 감각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편, 화가의 손때 묻은 아틀리에와 가구들을 그대로 살려둔 전시 공간은 마치 작가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박노수미술관의 진정한 백미는 건물 뒤편으로 이어지는 야외 정원에 있다. 박 화백이 평생에 걸쳐 직접 가꾸고 수집한 수석과 석물들 사이로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고개를 내미는 풍경에서 진정한 봄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비밀의 정원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정원 위쪽 전망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서촌의 전경과 함께 미술관의 붉은 지붕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꽃구경의 번잡함 대신, 바위틈에 핀 꽃 한 송이와 고요한 사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박노수미술관은 화려한 대형 미술관과는 다른, ‘집’이 주는 포근함과 예술가의 고집스러운 취향이 서려 있다. 서촌의 깊은 골목 끝에서 만나는 이 우아한 미술관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서서 고요한 사유의 시간을 갖고 싶은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다.
박노수미술관
위치|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1길 34
운영시간|화~일요일 10:00~18:00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관람료|성인 3,000원 / 청소년 1,800원 / 어린이 1,200원
문의|02-2148-4171
06336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로621
(대표전화 : 1600-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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