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 이야기


보이지 않는 돔, 런던의 하늘을 계산하다

런던 세인트 폴


글. 배윤경 건축칼럼니스트

“우리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고 해서, 자연의 신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_ 크리스토퍼 렌 경

1666년 런던 대화재는 중세의 오래된 세인트 폴을 검게 태워 폐허로 남겼다. 그러나 잔해 위에 다시 세워진 성당은 단순한 복구가 아니었다. 불탄 도시가 어떻게 스스로를 다시 상상할 것인가에 대한 선언에 가까웠다. 크리스토퍼 렌은 대화재 이후 ‘도시 교회 재건 위원회’의 수석 건축가로 임명되어 세인트 폴을 비롯해 50개가 넘는 교회를 다시 세우는 임무를 맡았다. 템스강을 따라 런던으로 들어오던 이들이 가장 먼저 기억한 실루엣, 전쟁과 화재와 재개발의 시간을 견디며 끝내 남아 있던 윤곽, 세인트 폴의 돔은 그렇게 런던이라는 도시의 얼굴이 되었다.

  l 아름다움은 곡선에, 진실은 그 안쪽에 숨어 있다

런던 한복판에서 세인트 폴을 마주하면, 처음에는 그것이 그저 균형 잡힌 고전주의 성당처럼 보인다. 긴 네이브 위로 교차부가 솟고, 그 위에 거대한 돔이 얹혀 있다. 그러나 이 건축의 진짜 중심은 평면보다도, 파사드보다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저 둥근 지붕에 있다. 이 도시는 성당을 중심으로 자라난 것이 아니라,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뒤에야 그 중심을 다시 하나의 돔으로 정리한 것처럼 보인다. 세인트 폴은 런던이 스스로를 질서 있게 보이도록 만든 거대한 마침표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외부에서 보는 돔과 실내에서 올려다보는 둥근 천장이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인트 폴에서는 이 당연함이 깨진다.

돔 내부 위스퍼링 갤러리(Whispering Gallery)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성당의 장식적인 내부와도, 바깥에서 보았던 장면과도 다른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벽은 더 투박해지고, 곡면은 장식 대신 벽돌 줄눈으로만 채워진다. 그제야 뭔가 비밀이 숨어 있음을 눈치챈다. 내부에서 보이는 얕은 안쪽 돔, 런던의 하늘을 지배하는 웅장한 바깥 돔, 그리고 그 사이에 무게를 실제로 떠받치는 원뿔 모양의 구조체가 있다. 크리스토퍼 렌은 우주와 영원을 상징하는 거대한 공간을 드높이 올리기 위해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세 개의 구조를 포개 놓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담대한 곡선뿐이지만, 그 숭고함을 지탱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두 번째 돔이다. 성당의 영광은 바깥 곡선에 있고, 진실은 그 안쪽에 숨어 있다.

  l 렌에서 가우디로, 성당의 돔에서 철교의 아치로

세인트 폴의 돔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이 숨은 구조가 단순한 장인의 감각이 아니라 수학과 실험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크리스토퍼 렌의 초기 스케치에는 돔 형상을 정의하기 위해 좌표축 위에 직접 그려 넣은 ‘y=x³’ 곡선이 남아 있다. 그는 로버트 후크와 함께 이상적인 석조 돔과 아치의 형태를 이해하려 했고, 매달린 줄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곡선(현수선)과 아치가 받아야 할 압축 사이의 관계를 설계에 적용했다. 로버트 후크가 “유연한 줄이 늘어지는 방식 그대로, 뒤집으면 강체의 아치가 선다”라고 남겼을 때, 그것은 시적인 비유가 아니라 구조 역학의 핵심을 압축한 문장이었다.

‘가장 효율적인 아치는 무엇인가’, ‘어디까지 얇게 만들어도 버틸 수 있을까’. 세인트 폴의 두 번째 돔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다. 내부에서 보이는 장식 돔 위로, 두께 불과 수십 센티미터의 벽돌 콘이 하나 더 솟아오른다. 이 얇은 벽은 850톤에 이르는 거대한 석재 랜턴과 십자가의 하중을 아래로 전달하는 통로다. 그 밖을 덮고 있는 외피 돔은 실제로 하중을 지지하지 않는다. 나무 뼈대로 형태를 잡고, 바깥에는 납 판을 덮은 비교적 가벼운 조물일 뿐이다. 도시가 기억하는 숭고한 반구는, 말하자면 얇은 옷에 가깝다. 진짜 힘은 그 안쪽의 벽돌 곡면과 아치가 담당한다. 이 방식은 200년 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실험한 기법과도 닮아 있다.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비롯한 몇몇 성당을 설계할 때, 도면 대신 작은 모형을 만들고 천장에서 줄과 체인을 늘어뜨려 그 위에 추를 달았다. 중력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처진 현수선의 곡선을 사진으로 찍어 뒤집으면, 그 곡선은 그대로 서 있는 아치의 이상형이 된다. 크리스포터 렌과 로버트 후크가 수식 계산을 통해 이상적인 돔을 상상했다면, 가우디는 체인의 모델을 통해 복잡한 곡면을 눈앞에서 계산해 낸 셈이다. 두 건축가는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도시에 살았지만, 자연이 만들어 내는 곡선이야말로 가장 안정적이라는 믿음을 공유했다.

크리스토퍼 렌은 건축가인 동시에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고, 왕립학회 창립에 참여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세인트 폴은 단지 한 사람의 걸작이 아니라, 계몽기 런던이 신뢰하기 시작한 새로운 사고방식의 응축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는 관찰될 수 있고, 측정될 수 있으며, 수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면 더 안정적인 구조, 더 합리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 세인트 폴의 돔 아래에서는 신을 향한 경외심과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가 공존한다.

  l 예술을 지탱하는 철저한 이성의 도시 계획

산업혁명이 세인트 폴에서 직접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인트 폴이 보여주는 정신은 이후 영국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기술 문명과 분명 같은 계열에 속한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며, 구조는 직관만이 아니라 계산과 실험을 통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은 성당의 돔에서 철교의 아치로, 기차역의 철골 지붕으로, 그리고 20세기 후반 런던의 하이테크 건축으로 다른 모습으로 이어져 갔다. 로이드 보험사 빌딩이나 하이테크 계열 건축이 배관과 구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거기에는 성당처럼 구조를 감춘 미학과는 반대 방향의 태도가 있다. 그럼에도 둘은 공통된 조상을 공유한다. 둘 다 형태 이전에 구조를 고민하고, 장식 이전에 성능을 계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세인트 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런던의 계산 속에 살아 있다. 런던은 성당의 돔이 특정 지점들에서 가려지지 않도록 보호된 조망 축과 높이 규제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언덕에서, 다리 위에서, 공원의 특정 자리에서 고개를 들면 세인트 폴이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시가 법과 도면과 수많은 숫자를 통해 미리 조율해 둔 결과다. 한때는 크리스토퍼 렌이 곡선과 하중을 계산해 돔을 세웠다면, 오늘의 런던은 다시 그 돔을 보이게 하기 위해 건물의 높이와 배치를 계산한다. 세인트 폴은 더 이상 가장 높은 건물이 아니지만, 여전히 도시가 스스로에 허용하는 하늘의 질서를 결정하는 기준점이다. 한쪽에서는 돔을 성스러운 곡선으로 기억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곡선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선을 도시에 긋는다. 예술은 언제나 찬사를 받지만, 그 예술이 서 있을 수 있는 조건은 철저한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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