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 이야기


유럽 건축 대가들의 주택을 만나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바이센호프지들룽


글. 배윤경 건축칼럼니스트 이미지 출처. 위키커먼스, 바이센호프 뮤지엄 홈페이지

“소파 쿠션에서 도시 계획까지(Vom Sofakissen zum Städtebau)”

_ 독일공작연맹의 강령

192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언덕 위에 세워진 ‘바이센호프지들룽’은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집을 선보인 주택 단지가 아니었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당대 최고의 거장들이 모여 대량 생산, 기능성, 위생을 결합해 모더니즘 주거의 정답을 제시하려 했던 급진적인 사회 실험이었다. 정치적 탄압과 전쟁 폭격, 훼손의 역사 속에서도 복원을 거쳐 살아남은 이 하얀 집들은, 100주년을 앞둔 오늘날에도 공간과 삶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여전히 무거운 질문을 건네고 있다.

  l 어떻게 살 것인가, 언덕 위의 질문

192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북쪽 언덕 위에 이상한 주택 단지가 하나 세워졌다. 이름은 바이센호프지들룽(Weißenhofsiedlung), 직역하면 ‘하얀 마당의 주거 단지’ 정도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도시들은 심각한 주거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공장과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던 슈투트가르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시에 이 도시는 진보적 시장과 공업·디자인계의 실험 정신 덕분에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은 이런 도시와 손잡고 하나의 전시를 준비한다. 이름은 ‘Die Wohnung(주거)’. 전시는 단순한 건축 이벤트가 아니라, “Wie wohnen?(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사람들 앞에 던졌다. 소파부터 도시까지, 생활의 모든 층위에서 품질을 높이려 했던 독일공작연맹은 이번에는 주택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환경을 다시 쓰고자 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언덕 위의 하얀 집들은 이 질문에 대한 건축가의 답안지였다. ‘바이센호프지들룽’은 독일공작연맹과 슈투트가르트 시가 공동으로 마련한 모델하우스 주택이었다. 공작연맹은 새로운 재료와 공업기술, 표준화된 생산 방식이 도시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했고, 슈투트가르트는 이 실험을 수용할 만큼 공업과 디자인의 역동성이 있는 도시였다. 자동차 회사와 기계 공장이 늘어나던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이미 신형 엔진과 금속 구조를 통해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이제 그 상상력을 주거라는 영역으로 옮겨올 차례였다. 도시 행정은 전시를 위해 언덕 위의 부지를 제공했고, 공작 연맹은 그 위에 근대 도시 거주자를 위한 표준 주택을 보여주는 계획을 세웠다. 의도는 분명했다. 단지 몇 채의 예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대량 생산·저비용·건강·기능을 동시에 만족하는 주거 모델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 ‘바이센호프지들룽’은 슈투트가르트라는 도시가 산업기술과 디자인, 사회 정책을 한곳에 모아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선언한 공간이었다.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

1907년 헤르만 무테지우스 주도로 뮌헨에서 결성된 단체로, 예술가·건축가·공업 디자이너·기업가가 함께 예술과 산업을 결합해 대량생산 시대에 걸맞은 고품질·표준화된 제품과 생활환경을 만들자는 목표를 내걸었다.

  l 삶의 표준을 향한 프로파간다

총감독은 39세의 미스 ‘반 데어 로에’였다. 그는 전체 마스터플랜과 일부 공동주택을 맡았고, 나머지 주택들은 유럽 각국에서 모인 17명의 건축가가 나누어 설계했다. 이름을 나열해 보면 거의 근대 건축 교과서의 목차에 가깝다.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한스 샤로운, J.J.P. 아우트, 브루노 타우트 같은 이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집을 그렸다. 누군가는 단독주택을, 누군가는 공동주택을, 누군가는 연립주택을 설계했다. 겉으로 보면 개별 주택의 성격은 꽤 다르지만, 단지 전체를 멀리서 보면 하나의 합의가 분명하다. 집은 더 이상 전통의 표본이 아니라 기능의 조합이어야 한다는 것. 장식은 물러나고, 빛과 공기, 경제성과 표준화가 전면에 나섰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곳에 자신이 오랫동안 구상해 온 두 가지 유형의 집을 선보였다. 둘 다 철근콘크리트 기둥과 슬래브를 골조로 삼는 돔이노(dom-ino) 타입이지만, 하나는 시트로앙형 단독주택이고 다른 하나는 더블하우스였다. 시트로앙형 집은 높은 층고의 거실과 옥상 테라스, 기능별로 정리된 침실·부엌·욕실을 하나의 명확한 볼륨 안에 압축해 넣은, 현대인의 일상용 주거 모형이었다. 

더블하우스는 같은 골조 위에서 벽을 하중에서 해방해 가변적인 평면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족 구성과 삶의 방식에 따라 공간을 다시 짜맞출 수 있는 집합 주거의 개념 모델이었다. 그는 이 단지가 완성되자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평면, 자유입면, 수평 연속창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건축의 5원칙’을 발표했다. 사람들은 이 언덕에서 단지 집을 본 것이 아니라, 근대 건축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을 처음 목격했다. 건축가들은 자신들이 모든 사람을 위한 집을 짓고 있다고 믿었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빛과 공기를 확보하고, 더 위생적이고 더 유연한 생활 공간을 제공하는 집. 공장에서 생산한 부재를 조립하듯 짓고, 표준화된 부엌과 욕실, 움직이는 벽, 접이식 침대, 다기능 거실을 통해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방식. 오늘날에는 너무나 익숙한 이 아이디어들이 그때는 급진적인 사회 개혁안처럼 보였다. 이 단지는 말하자면 건축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조직할 수 있다는 믿음의 압축본이었다. 주거는 단순히 육체와 영혼이 쉬는 셸터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장치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 말이다.

  l 사라질 뻔한 미래

하지만 모든 프로파간다가 그렇듯, 이 단지 역시 처음부터 모두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이 집들은 당시 독일인들에게 지나치게 낯설었다. 박공지붕 대신 평지붕을 얹고, 이웃한 전통 가옥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기존의 주거 감각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건축가들은 자동차를 타고 일하고 쉬는 현대 도시인의 일상에 맞는, 보다 합리적이고 범용적인 집을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지식인, 언론인, 배우, 오페라 가수들처럼 문화적 감수성이 높은 소수 계층의 취향에 머물렀다. 정치적 적대는 더 노골적인 형태를 띠었다. 보수 진영은 이 단지를 독일 전통과의 단절로 읽었고, 나치는 이 단지를 외래적이고 퇴폐적인 것으로 비난했다. 평평한 지붕과 장식이 제거된 벽은 ‘예루살렘의 교외’라고 조롱받았고,1) 아예 낙타와 중동풍 인물을 끼워 넣은 포토몽타주를 만들어 희화화하기도 했다. 전쟁은 건축 논쟁을 훨씬 더 잔인한 방식으로 정리했다. 언덕 위라는 입지 때문에 이곳에는 대공포 대가 설치되었고, 미스가 설계한 공동주택 건물에는 군 병원이 들어섰다. 1945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단지의 약 40퍼센트가 파괴되었다.2) 이후 서독 정부가 철도와 세관 직원들을 입주시켰을 때, 이들에게 바이센호프는 근대 건축의 기념비가 아니라 낯설고 불편한 생활 공간이었을 것이다. 어떤 세입자들은 평지붕 위에 경사지붕을 얹었고, 르 코르뷔지에의 집 위에는 옥탑이 덧붙었다. 모더니즘의 선언문은 그렇게 일상의 불편 속에서 조금씩 훼손되었다. 그렇다고 이 언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정부가 이 단지를 매각하려 하자 건축가들과 지지자들이 반대 운동을 벌였다. ‘바이센호프의 친구들’ 같은 단체가 생겨나 보존과 복원을 요구했고, 결국 연방 정부와 슈투트가르트 시는 공동 재건 프로그램에 합의했다. 샤로운의 집은 1981년에, 르 코르뷔지에의 집은 1983년에 복원되었다. 어떤 건물은 뼈대만 남기고 완전히 해체한 뒤 다시 세워야 했다.3) 이 복원 과정은 단순히 한 시대의 건물을 살려내는 작업이 아니라 건축이 한때 품었던 사회적 야심, 삶 전체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구출하는 일이기도 했다.

2027년이면 ‘바이센호프지들룽’은 100주년을 맞는다. 전쟁과 혐오, 변형과 복원을 모두 통과하고도 여전히 100년 전과 같은 메시지를 말하는 듯하다. 오늘날 건축은 자본과 행정, 안전과 규정 사이에서 조율되는 기술로 보이기 쉽지만, 이 언덕은 한때 건축이 삶 전체를 다시 써보려 한 적이 있었음을 여전히 상기시킨다. ‘바이센호프지들룽’은 완벽한 유토피아라기보다, 이후 바우하우스와 근대 주거 건축으로 이어지는 여러 실험의 출발점이자 참고서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 행위는 여전히 가장 급진적인 질문일 수 있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직접 공간으로 던진 이 주택 단지는, 지금도 도시를 걷는 우리에게 집과 삶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조용한 권유를 이어가고 있다.

*1), 2), 3) 출처: 

https://www.nytimes.com/1984/05/17/garden/in-stuttgartrenovation-of-a-1927-bauhaus-projec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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